여전도회 연재 '작은자운동 45년'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20년 01월 16일(목) 17:18
작은자운동의 사회복지 의미와 기여도



1. 한국사회변동과 작은자운동의 흐름

한국사회는 6.25전쟁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1950년~1970년대)과 산업화 과정(1970년~2000년대)에서 구조적으로 사회변동이 일어났다. 1960년대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을 통하여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사회해체와 가족해체 등 사회적 병리현상이 나타났었다.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은 1953년부터 공식적인 통계발표를 시작할 당시 67불에 불과하였으나, 2019년 현재 3만불 대로 올라갔다. 1970년대 초반기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빈곤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해주고 지역사회주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사회선교사역을 시작하였으며, 독일교회들의 해외후원조직인 KNH와 연결되어 약 20년간 후원을 받았다. 1974년 KNH후원을 받기 시작할 때 1인당 국민소득은 550불 수준, 1987년 독일KNH로부터 후원종결을 준비할 것을 권유받아 작은자후원회를 발족하였을 당시(후원 종결 10년전)는 3500불 수준, 1994년 12월 31일 독일KNH 후원 종결할 당시는 1만불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발전과 선진사회화 과정(2000년대~2019년 현재)을 거치면서 저출산, 고령화, 경제적 양극화 현상, 외국인근로자유입과 다문화 가정 등 또 다른 차원의 사회문제들도 부각되고 있다.

1962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서울에는 의류나 옷, 가발공장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모여들었다. 5년 만에 서울 인구는 1백만 명이나 급증하였다. 서울에는 청계천, 중량천, 정릉천, 망원동, 봉천동, 창신동 등지에 빈민촌이 생겨났고 주택난, 구직난, 소득불균형과 빈곤계층의 급증 등 사회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기 한국사회는 직면하게 된 사회문제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자원이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목회자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작은자에 대한 구호활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황화자 총무는 '선교와 사회복지' 창간호(1986년)에서 "작은자(The Leasts)란 경제적인 이유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라고 정의하였다.

즉 선교사역에서 작은자는 교회를 중심으로 빈곤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목회자와 국내외 후원자들이 지원하였던 선교사역의 대상자를 의미하며, 사회복지 측면에서 작은자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대상자인 클라이언트(Client)를 의미한다.

또한 "작은자운동(To The Leasts Movement)은 국내외적으로 작은자들을 돕고자 하는 하나님의 귀한 봉사자들과 재정적 후원자들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지만 주변에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는 작은자들을 찾아 연결시켜주는 운동이다" (황화자 총무, '작은자운동의 사업방향 제시', 선교와 사회복지 1987년) 라고 하였다.

작은자운동을 사회복지 측면에서 정리하면, 빈곤지역사회의 선교현장에서 첫째, 다양한 유형의 '문제와 욕구'를 가진 클라이언트(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를 지역사회에서 찾아내서 이들에 맞는 사회복지서비스를 개발하고 전달한다. 둘째, 사회복지서비스를 위해 사회복지자원들(물적자원, 인적자원, 조직자원, 시설자원, 정보자원 등)을 발굴(동원, 조직, 연결)하며, 전달한다. 셋째,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제반 사회복지활동이다. 넷째, 사회복지 전문 인력을 교육 훈련시키며, 자격이 있는 전문가들을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에서 기능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충원한다.

이처럼 시대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사회문제에 대응하고 작은자의 생존욕구들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작은자운동은 시작되었다.

김중호 (Bowen가족치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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