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선교

[ 땅끝편지 ] 9 네팔 편

이원일 목사
2019년 12월 17일(화) 00:00
산골 학교에서 집회 중 드라마를 공연하는 청년들.
청년 단기팀이 네팔에 단기선교 왔을 때의 일이다. 네팔 산골 마을을 다니며 준비한 집회 프로그램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의료팀이 아니었지만, 준비해온 구급약으로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다. 그때 청년들은 네팔 산 속의 열악함을 많이 느낀 것 같다.

한 청년이 산을 오르는 중에 질문을 한다. "이들은 우리가 오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우리가 와서 괜히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 느끼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 그들은 외부 사람과 현대 문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점점 밀려오는 문명의 이기와 자본주의 물결에 휘말리며, 분명 박탈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선교든 장기선교든 그들을 잘 살게 하고, 물질을 채워주는 것이 선교의 이유와 목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선교와 봉사는 하나님의 복음이 이유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 이유이다.

질문한 청년에게 대답했다. "우리 단기팀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이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영원한 생명 때문에 온 것이다."

문명화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복음이 놀랍기에 문명화도, 인간다운 삶도 불가능한 것 같지만 진행해가는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의미'도 생명력을 잃는다.

꽃을 피우고자 씨앗을 심지만, 씨앗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씨앗을 뿌리겠는가? 씨앗에 생명을 주시고, 그것을 피우게 하실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믿기 때문에 사실 씨앗도 심고, 꽃도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주님의 복음, 주님의 능력, 주님의 계획을 신뢰한다면, 단기 선교든 장기 선교든 실행하게 될 것이다.

빌립 집사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 단기사역을 해서 에티오피아 내시는 주님을 만났고, 그래서 에티오피아 2,000년 기독교 역사의 물꼬를 튼 것이다.(에티오피아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 역사를 2,000년으로 본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네비우스 삼자정책(자치, 자립, 자전)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말들을 한다. 네비우스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2주간 한국에 들러서 언더우드를 비롯한 한국의 선교사 초년생들에게 선교정책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단기선교가 한국교회의 건강한 부흥의 한 원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기팀이나 단기 선교사가 와서 네팔을 한 순간 뒤집을 수는 없다. 현지 언어도 못하고, 문화도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 장기 선교사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있지만, 한 개인, 한 가족, 한 마을, 한 민족, 한 국가를 향한 복음의 물꼬를 터놓고 갈 수도 있다.

또한 선교 중에 느끼는 것은 주는 것 만이 아니라, 받는 것도 크다는 것이다. 단기팀원들이 종종 이야기 한다. "내가 가르치러 왔는데, 내가 배우고 간다", "주려고 왔는데, 받고 간다", "하나님을 전하려고 왔는데, 오히려 내가 주님을 만나고 간다"고 말이다.

비전은 눈에 관계된 단어다. 즉 보면, 꿈과 기대와 기도 제목이 생긴다는 말이다. 선교지에 무엇인가 작은 흔적을 남기고 가기도 하지만, 그 선교지를 봄으로 해서 개인과 교회가 생각이 바뀌고, 새롭게 비전을 품게 될 수도 있다.

이번 겨울에도 한국의 단기팀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모두 주님의 영광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할렐루야!

이원일 목사/총회 파송 네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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