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소동

[ 목양칼럼 ]

백종욱 목사
2019년 11월 29일(금) 00:00
얼마 전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평소에 못 본 고양이 무리가 교회 마당을 서성거렸다. '쫓아버릴까'하다가 그냥 모른 채 지나가려는데 마침 교회 권사님이 주위를 경계하듯 두리번거리며 고양이를 향해 다가갔다. 권사님을 발견한 고양이들은 마치 순한 양처럼 권사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너무 신기해 '어떻게 하시나'하고 몰래 지켜보고 있는데, 권사님이 교회 밥그릇에다 고양이가 먹을 사료를 담아 먹이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길고양이를 돌보시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지나갔다. 며칠 후 새벽 예배를 나오시는 교우들 몇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새벽에 고양이 때문에 무서워서 교회를 오기 힘드니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권사님을 불러 사정을 말씀드렸다. "권사님, 고양이를 사랑하고 키우시는 일은 귀한 일이지만 공공장소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시면 다른 분들이 힘들어 하실 수 있으니까 죄송하지만 고양이 밥은 교회 밖에 있는 도로에서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정중하게 부탁드렸다. 그러자 권사님께서는 정색을 하며 "아니 목사님! 고양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하나님 만드신 동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언성을 높였다. 속으론 짜증이 올라왔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말씀드렸다. "권사님, 하나님 창조하신 생명이 어디 고양이 뿐이겠습니까? 교회 마당에 돌아다니는 고라니도, 오소리도, 그리고 저 새들도 다 주님이 창조하신 것들이지요. 생명을 사랑한다면 이 동물들 모두 다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권사님은 고양이는 반려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핑계를 대시면서 고양이 밥 주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셨다.

그리고는 새벽마다 밥그릇 전쟁이 시작이 되었다. 성도들 중에 누군가가 교회 마당에 있는 고양이 밥그릇을 치워버리면 어느새 다시 밥그릇이 놓여져 있는 일이 반복되었고 급기야 고양이로 인해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인근 지역주민들 가운데서도 고양이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정말 단호하게 권사님에게 권면했다. 고양이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실족한다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즉시 중단하시라고도 말했다. 시청에 연락해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요청했고 교회와 교회 주변에 고양이들을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물론 권사님은 그 일 이후로 필자를 피하기 시작했고, 한동안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가 지속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대처했고 결국 권사님은 교회 마당에 있던 밥그릇을 손수 치우시고 다른 장소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다. 때로는 목사로서 성도들에게 원치 않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할 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미루고 방치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우선순위를 항상 염두에 두는 가운데 우리 교회가 고양이들의 피난처가 아니라 한 영혼을 구원해 제자 삼는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교회로 든든히 세워져 나가기를 소망한다.

백종욱 목사/송추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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