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호흡을 선물 받아요"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온유 씨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9년 11월 18일(월) 11:07
"…어린 시절 낯선 이곳에 왔을 당시에는 매일 주어지는 고통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우 고통에 익숙해졌을 때에는 숨을 스스로 쉴 수 있는 힘까지 전부 다 잃어 버리고 난 뒤였다. 멀쩡했던 목에는 구멍 하나가 생겨났는데 용도를 말하자면 제3의 콧구멍이다.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몸으로 살아가려면 기도로 연결되는 이 구멍을 통해 매 순간 인공호흡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벌써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나는 인공호흡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호흡기장애 1급 환자이고 16년 동안이나 같은 병원에서 살고 있는 장기 입원 환자다…"

'겨우 14살 때' 그저 단순한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을 뿐이었다. 기침이 조금 오래간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폐에 물이 찼다(흉막삼출액)고 했다. 병명을 알지 못한 채 결핵약을 꼬박 9개월을 먹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폐에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했지만 오진. 이어 인공뼈를 이용한 흉곽재건술을 받았지만 몸 속에 심어둔 인공뼈가 염증을 일으키면서 갈비뼈가 부러졌고 척추와 흉곽이 무너졌다. 그렇게 수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시한부 판정만 수차례. 온 몸이 망가졌고 급기야 자가 호흡마저 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서른 두살의 삶을 살아가는 김온유 씨. 그녀가 16년 동안 버텨냈고 여전히 버텨내야 하는 인생이 누군가에게는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이루신 일들은 명백한 은혜고 기적"이라는 온유 씨는 "지금 이순간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고백한다.

얼마전 온유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러낸 신앙에세이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생명의말씀사)를 펴내고 독자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의료사고를 겪었고 아직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한 청년의 신앙고백"이라고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그를 지난 13일 만났다.

환한 미소가 유독 인상적인 온유 씨는 앰부(산소 공급을 못하는 환자에게 인위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게 하는 기계)로 호흡하고 있었지만 '비극'의 주인공처럼 슬퍼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환자복 차림이더라도 가장 예쁜 모습으로 하루를 지내고자 매일 아침 단장을 한다"는 온유 씨는 "여전히 의욕이 넘쳐서 함께 있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사람, 몸이 약하다고 해서 결코 마음까지 약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병원이라는 울타리 안에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책을 받기 전까지 책이 나올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고 했다. "저는 당장 오늘이라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쓰는 순간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하나님이 맡겨주실 때까지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아이가 하나님과 함께 성장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들도 자신의 삶 속에서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신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에 저를 쓰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고 감동이에요"

사실 온유 씨는 책을 쓰고 싶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닌데 무슨 은혜가 될까 싶었다. 원하지 않는 동정도 받기 싫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내 자신의 이야기는 부끄러울 수 있지만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이뤄낸 이야기들은 묻어두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온유 씨는 "매번 고비를 맞았지만 어떠한 치명적인 위협조차도 무색하게 만들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면서 "그 이야기들을 나누는 일은 내 의지가 아닌 것 같았다"고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었다는 두려움과 몸 조차 가눌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는 온유 씨는 "주님만은 숨을 쉬지 못해도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주어진 기적 같은 사랑이었기에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고백이 온유 씨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자 친구들의 고백, 그리고 자신의 고백이라고 했다.

온유 씨에게는 특별한 친구들이 있다. 나이와 성별, 국적과 인종까지 초월한 특별한 친구들이다.매일 같이 이어지는 앰부 봉사자들이다.

온유 씨의 숨은 다시 멈췄고 의사들도 그를 포기했다. 딸의 호흡을 포기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수동식 앰부를 24시간 눌러 딸에게 호흡을 공급했다. 결국 밤샘을 하던 아버지는 교통사고가 났고 어머니의 근육은 경직됐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청년이 교회에 소식을 전했고 앰부 봉사자를 모집했다. 한번에 200여 명의 청년들이 봉사를 신청했다. 평범했던 겨울날 그렇게 기적이 시작됐다. 좁은 병실 안에 미처 다 들어올 수 없어서 문 앞을 서성이기도 하고 휴게실에서 기다리기도 하다가 한 사람이 앰부를 누르다 지치면 바로 다음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앰부를 넘겨받았다. 꺼져가는 호흡이 계속 연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적처럼 시작된 릴레이 속에서 누군가 앰부를 누를 때마다 새로운 호흡이 폐부를 가득 채우고 목구멍 위까지 흘러 넘쳤어요. 저는 그렇게 기적같이 호흡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지만 매일 매 순간 호흡을 선물받게 된 거에요"

교회 청년에서 시작한 작은 릴레이는 벌써 11년 째 이어지고 있다. 하루 4교대 24시간 봉사자들이 함께 숨을 쉬는 1801호 병실은 이미 힐링 공간이고 예배 처소가 되었다. 그들은 온유 씨와 하루 24시간 30cm 이내에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위로가 되어준다. 또 각양각색의 넘치는 축복과 행복을 나눈다. 따로 호흡하지만 또 같이 호흡하는 삶. 이들의 특별한 동거가 기적같이 아름답다.

온유 씨의 가장 큰 소원은 "퇴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이 회복된다면 "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온유 씨의 '해피엔딩'은 무엇일까.

"생명을 주시는 한,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기도한다"는 온유 씨는 "오늘은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덜 아프고 덜 외로워서 행복하다"면서 "무심코 집어든 말씀 노트 속에서 주님은 몇번이고 내게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가자'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해피ing'중이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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