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에서 갈등 해결의 길을 찾는다

[ 주필칼럼 ]

변창배 목사
2019년 11월 15일(금) 08:00
1974년 5월 어느 날, 캐나다의 작은 마을 엘미라(Elmira)에서 한 밤중에 소동이 일어났다. 십대 소년 두 명이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승용차 24대를 파손하고 타이어를 칼로 찢었다. 22가구에 침입해서 울타리를 부수거나 창문을 깼다. 교차로 신호등도 부수고, 공공시설물을 닥치는 대로 파손했다. 열여덟 살 소년 두 명이 조용한 시골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두 소년은 곧 체포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편안하게 잠들 수 없게 되었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서 노심초사했다. 십대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소년들의 범죄에 대한 분노도 들끓었다.

엘미라의 보호위원 마크 얀치와 데이브 월트가 이 사건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마크는 가해자에게 벌을 준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물으며, 소년의 미래와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마크는 가해자의 한 명인 러스 켈리와 피해자의 대화 자리를 만들었다. 지역의 매코넬 판사도 마크의 아이디어를 시험하도록 허락했다. 피해자를 만난 소년들은 마을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을 이해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다. 열심히 일해서 피해도 보상했다. 그 과정에서 러스 켈리는 노동의 이유와 재미, 살아가는 방법도 배웠다.

엘미라 사건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처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고 책임질 기회를 제공해서 피해회복에 참여시키는 문제해결방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를 통해서 피해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가해자가 진정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징벌적 정의(punitive justice), 혹은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와 상대되는 패러다임이다.

회복적 정의 운동은 평화교회인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시작했다. 미국 이스턴 메노나이트대학의 하워드 제어 박사는 1979년 이후 회복적 정의 운동에 매진해서, 1990년에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출간해서 회복적 정의의 주춧돌을 놓았다. 제어 박사는 회복적 정의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성경의 '자비'를 현대 사회법 체계에 적용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캐나다와 미국을 넘어서 뉴질랜드, 호주, 유럽 등에 확산되었다. 뉴질랜드는 1989년에 세계 최초로 청소년 범죄 사법처리에 회복적 정의 방식을 법제화했다. UN도 2000년 이후 회원국에 회복적 정의 접근을 권장하고,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운영 핸드북'을 발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과거사 청산에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적용했다. 지금은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채용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국의 헐 시(Hull City)와 리즈 시(Leeds City)는 회복적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도시 전체의 사법 시스템, 학교 교육, 비즈니스 영역까지 회복적 정의 철학을 반영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문제 학생으로 인한 수업방해 행위가 약 90% 가량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사회복지학의 교정복지 영역에서 회복적 정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세계적으로 회복적 사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0년대에 대학과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회복적 사법 연구와 실천이 시작되었다. 민간영역에서는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와 갈등해결센터 등이 회복적 정의 운동의 대표적인 기관이다.

현재 서울 가정법원 소년부가 '화해권고'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의 '회복적 대화 프로그램', 검찰의 '형사조정제도', 법원의 '형사화해제도' 등 회복적 정의 시도가 다각화되고 있다. 2010년 이후 학교의 생활교육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회복적 도시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교육행정과 사법영역을 포괄하는 회복적 공동체 구현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회복적 정의의 탄생에 공동체 정의(Community Justice)와 성서적 정의(Biblical Justice)가 큰 뒷받침이 되었다. 한국교회도 교회 내 갈등 중재와 해소에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적용하면 어떨까. 용서와 사랑에 기초한 '회복'이야말로 교회내 분쟁과 갈등 해결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회복적 정의 개념을 교회의 운영에 도입하면 갈등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변창배 목사 /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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