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말이야!

[ 4인4색 ]

윤태혁 장로
2019년 11월 13일(수) 10:00
무언가 의미 있고 흥미로운 관심사에 대해 주위의 관심을 끌 때, 또는 대화 중에 맞장구를 칠 때나 남의 얘기할 때에도 "아! 글쎄 말이야"로 말머리를 꺼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의례히 그동안 지내온 얘기나 사회적 이슈 등 세상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지만, 남에 관한 얘기에도 많은 관심을 지니는데 그것도 상대방을 칭찬하기보다는 흉을 보거나 비판하는 경향이 높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한 개인이 설정되면 입방아의 대상이 되어, 평소 좋지 않았던 감정을 집중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글세 말이야"로 이어지는 가벼운 얘기들, 그러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둘이서 은밀하게 나눈 대화라도 언제인가는 그 말이 새어 나와 다툼도 일어난다. 물론 꼭 흉이 되는 얘기가 아니어도 개인 신상에 관한 얘기가 거론되는 것은 불쾌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나눈 얘기라도 그 말을 잘못 전해 듣는 당사자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고, 때로는 법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일이 되기에, 남의 얘기를 하거나 전할 때는 항상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개인의 선입견이나 생각만으로 또는 평소에 불편한 관계로 인해서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잘못 와전되는 일도 매우 위험한 일이 될 것이며 그 피해가 미치는 당사자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잘못된 평가로 인한 불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속에는 남의 말 좋아하는 우리네 속성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 같다. 좋은 소식보다는 불미스러운 일에는 빨리 전하고 싶은 충동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잠 10:18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입소문에 민감하며 충동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인한 아픔들과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부딪치는 결과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면서, 우리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우리의 입술이 우리 사회를 이루어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지난날 우리 민족의 인심 후하고 된장 냄새나는 순박함, 그리고 어리숙하며 상대방의 작은 실수는 못 본 척 허허 웃으며 지나쳤던 해학적이고 아름다웠던 미덕들을 돌아보며, 긴장감과 조급함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적 변화에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단순 무식한 듯하면서도 어질고 슬기롭고 여유로웠던 옛 모습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주변이 온통 삭막하고 헷갈리는 세상으로 변화되면서,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바쁘게 살아왔는지 답답한 마음에 요즘은 오히려 지난날들이 그리워질 때가 많다. 아 옛날이여!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16:8)

윤태혁 장로/전국장로성가합창단협회 회장·상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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