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하지 않은 네팔 백성

[ 땅끝편지 ] 네팔 편 3

이원일 선교사
2019년 10월 29일(화) 00:00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산속 마을의 가옥들.
2015년 4월 25일 토요일 오전 11시 56분 경에 네팔의 고르카에서 진도 7.8의 대지진이 있었다. 이로 인해서 수도 카트만두를 포함한 인근 지역에 큰 피해가 있었다. 인명 피해만 해도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도 굉장했다.

진앙지는 산지였는데, 산지 가옥 구조는 돌에 흙을 발라 고정시키면서 쌓아 올리는 형태가 대부분이어서 지진으로 흔들려 산지의 가옥 피해가 대단했다. 두 눈으로 목격한 산지 주거지의 피해는 마을이 초토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네팔에 있지 않았다. 서둘러 네팔에 들어오는 데 1주일이 걸렸다. 수도 카트만두에 지진이 강타한 지역은 3, 4층 건물들이 기울어지거나 누워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크고 작은 공터나, 건물 붕괴 위험이 적은 곳에 캠프를 이루고 있었고, 집이 성한 지역의 사람들도 계속적으로 있는 여진 때문에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공터들을 찾아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진앙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2번 째 큰 지진이 있을 때, 필자는 진앙지 접경인 다딩 군 산속에 있었다. 마을마다 피해가 없는 곳이 없었다. 집은 무너지거나, 기울어져서 주거 기능을 상실했고, 산사태의 위험이 있어서 마을을 통째로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마을에 막 도착했을 때, 주민들은 무너진 집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러 와 있는 상태였는데, 여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지진이 온 산을 흔들었다. 골짜기 깊고, 넓은 산골 전체가 여기 저기 무너져내리자 일어나는 흙먼지가 안개와 같이 자욱해졌다. 필자는 오히려 덤덤했는데 이미 지진으로 마을과 가족들을 잃은 지진 지역의 한 여성은 목이 터져라 우는 것이다. 그 여인은 그 지역 목회자의 며느리였다. 물건을 찾으러 마을로 들어간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역지의 지진 피해 상황을 알아보고자 들어갔지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다. 그저 우는 사람 옆에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무력한 자신을 느끼는 것은 잔인할 정도로 허탈했다.

지진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과 함께 한 이원일 선교사.
3일 길을 왔고, 더 깊이 가서 다른 지역을 보고자 했지만, 조금 더 올라가다가 함께 했던 현지 목회자가 더 이상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해서 돌아서 내려왔다. 아름답고 평온했던 산은 마치 살얼음을 걷는 것과 같이 두려운 대상이 됐다. 비탈진 산 속에 돌들이 불안하게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았기에 그 산에서 나고 자란 목회자도 종종 걸음으로 위를 쳐다보면서 걸었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에는 목놓아 울던 목회자 며느리가 웃으면서 날 맞이해주었다. 예배 때 설교하는데 "지진 때, 자신들을 제일 먼저 찾아준 외국인입니다"라면서 필자를 극찬하며 소개했다. 아무 것도 도와 준 것이 없었는데…. 너무나 부끄러웠다.

지진 발생 후 여기저기서 일어날 폭동이 염려되었다. 생필품이 있는 마트들이 습격을 당하거나, 사재기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상할 정도로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국가의 대응이 늦기는 했지만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 큰 나라,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서는 폭동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만, 네팔에서는 재앙 앞에서도 백성들의 폭동 사건은 없었다. 악한 성품도 없고, 어디에다 호소할 곳도 없어서일까? 그저 구호를 기다리면서 삶의 터전을 흔들어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영적인 부분도 비슷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헛된 우상 앞에서만 기다리는 이 백성에게 우리 주님의 복음이 급하게 찾아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이원일 목사/총회파송 네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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