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벗습니다

[ 주간논단 ]

이만규 목사
2019년 10월 22일(화) 10:00
모두가 다 그렇겠지만 젊을 때 나는 눈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시력이 떨어져서 시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사실 제일 걱정이 시력의 저하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해야 할텐데 시력이 나빠져서 걱정이다. 시력이 저하 되면서 계속하여 눈에 맞는 안경을 맞춰서 쓴다. 무엇이든지 더 자세히 보고, 정확히 보려고, 어떤 정보라도 절대로 놓치지 않고 정확히 보려고 점점 더 돋보기 도수를 높였다. 그러면서 봐야 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사실 구체적이고 너무나 정확히 보았다. 남의 얼굴도, 남의 태도도, 때로는 그 안경으로 남의 눈의 티를 보고 남의 숨겨진 마음까지 정확히 보고 정확히 판단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나는 이제 안경을 벗으려 한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이다. 세상의 현상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안경 쓴 내 눈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으로 뵐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돋보기안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은 겸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눈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주님을 보려고 하고 주님의 뜻을 찾으려 한다. 내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아무리 정확히 보려고 애를 써도 볼 수 없는 세상 사(事), 그리고 주님의 뜻을 안경 쓴 눈이 아니라 겸손한 무릎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고 주님이 안 가르쳐 주시고 안 보여 주셔서 내가 볼 수 없다면 그냥 모르는 대로 그렇게 살려고 한다.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만 알려고 한다. 내가 몰라도 되는 일이라면 주님께서 침묵하실 것이고 내가 꼭 알아야 할 것이라면 안경을 벗어도 보여 주실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는 안경 도수를 높이며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면 내가 몰라도 되는 것이기에 무슨 일이든 그냥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살기로 했다.

이제 남을 향해서도 안경을 벗으려 한다. 남을 너무 정확히 보고 너무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을 너무 빨리 알아차리고 너무 빨리 판단하는 것은 때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안경을 쓰고 남의 눈에 티끌을 찾아내기보다는 차라리 안경을 벗어, 남의 눈의 들보도 안 보려고 한다. 남의 얼굴에 티를 보고 내 얼굴을 찡그리기보다는 차라리 못보고 웃으며 살고자 한다. 남의 흉이나 티는 못보고 그냥 남의 둥근 얼굴만을 보고 예쁘다고 좋아하는 그런 삶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남의 잘못과 남의 흠을 보기 위해서 돋보기 도수를 높이고 눈을 부릅뜨기보다는 차라리 마음의 안경을 벗어, 남의 티를 못 보면 모든 사람을 다 좋게 볼 수 있고 그러면 우선 내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안 봐도 되고 몰라도 되는 남의 잘못이나 흠을 너무 정확히, 또 많이 본다. 그래서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을 판단하고, 싫어하고, 질시하는 미련한 짓을 하면서 자신이 마치 똑똑한 사람인 것으로 착각한다. 안 봐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려고 안경 도수를 높이고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는 실족한다. 하나님이 안 보여 주시고 내가 못 보는 것은 안 봐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만 보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만 알려고 한다. 꼭 봐야 하는 것만 보고 꼭 알아야 할 것만 알려고 한다. 눈이 아니라 무릎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고 안경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보려고 한다. 안경을 닦기보다 마음을 닦아서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한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마 5:8)라고 하셨다. 나 자신을 볼 때는 돋보기로 보지만 남을 볼 때는 안경을 벗고 보려고 한다. 남의 흠을 보려고 안경의 도수를 높이기보다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도수를 높이려 한다.



이만규 목사/신양교회 원로목사, 한국목회사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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