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람데오

[ 목양칼럼 ]

서대일 목사
2019년 10월 18일(금) 00:00
하루는 한 청년이 마이크 테스트를 하기 위해 강대상에 올라갔다. 강대상에서 마이크를 점검하고 내려오더니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강대상 위에 올라가니까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보이네요."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청년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제가 예배 시간에 조는 것도 보셨겠네요?"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내가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끔 졸았는데 다시는 예배 시간에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한 번은 교인들과 나눔을 하는데 한 여자 집사님이 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목소리가 커지고 지나치게 혼을 낼 때가 있다고 한다. 어느 날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심하게 혼내려다가 갑자기 '자신의 지금 모습을 목사님이 본다면 이렇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들을 다르게 대했다고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말과 행동은 이처럼 달라진다. 그렇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믿는 우리의 삶은 지금과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말과 행동은 물론이고, 생각까지도 달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부터도 사람들이 보면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하곤 한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의식하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무시하며 행동할 때가 있다.

'코람데오'는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앙하는 우리에게 '코람데오'의 모습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앞에 계시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알고 계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배를 드리거나 소그룹으로 모일 때, 당회에서 교회 일을 논의할 때 '하나님 앞에서' 해나간다면 모든 모임에 기쁨과 평화가 임할 것이다. 그 모습이 가정과 직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기를 청할 때 요셉은 거절한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괜찮다고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고 말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요셉은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산 것이다.

제자훈련의 하나로 영성일기 모임을 교회에서 가지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훈련의 하나로 일기를 쓰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처음에는 염려했지만 감사하게 진실한 나눔으로 서로가 은혜를 받고 있다. 그와 함께 조금씩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게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다.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 믿음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가 나로부터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서대일 목사/반석위에세우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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