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도 변화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 11월목회계획 ] 수능과 가족의 성장

황영태 목사
2019년 10월 11일(금) 11:17
11월에는 대입 수능이 있는 달이다. 목회자는 불안함에 힘겨워하는 부모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의 어려움에 동참할 수 있다. 또한 아이를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마음을 가눌길 없는 어머니들을 위해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고 시간을 정해 기도할 장소를 제공한다. 첫 시간은 목회자가 말씀을 전하며 기도회를 인도하고, 그 이후는 자유롭게 휴식시간을 가지며 정담을 나누다 보면 서로 위로도 되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수능 시간표를 붙여 놓고 같은 시간에 자녀는 시험에, 부모는 기도에 임하는 것이다.

수능시험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까? 자식을 잘 키워보려는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녀를 이해하기 어렵다. 평소 부모와 자녀가 마음 속의 말을 서로 내놓지 못하고 지낸다면, 수능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가정을 압박할 때 갈등이 증폭되고 폭발해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단순히 자녀에게 잘해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내면적 성장을 계속한다. 예를 들어 갓난 아기는 자기 존재 밖에 모른다. 세상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아기가 어떻게 타자(他者)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일까? 학자들은 그 비밀이 부모와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온 세상에 나 혼자 뿐이며 나는 모든 것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아기에게 '좌절(Frustratioin)'이 찾아온다. 아무리 울어도 젖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 때 엄마는 너무 피곤해 깜빡 잠이 들어 울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급히 일어나 젖을 물렸지만, 아기는 이미 너무 울어 속이 상하고 말았다. 젖도 먹지 않고 계속 운다. 엄마는 애처로워 억지로라도 젖을 먹이려 하지만 아기는 거절하며 깨물기까지 한다. 엄마는 아기가 미워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일은 엄마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은 부모 자녀간 갈등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기는 엄마를 '대상(Object)'으로 삼고, 이를 이용하여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울어도 젖이 들어오지 않을 때 좌절했고, 이 좌절로 인해 자기가 온 세상의 주인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나 외에 엄마라는 대상이 있음을 알게 됐고, 이것이 내면적 성장이다. 또한 자신의 내면적 고통이 엄마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엄마를 미워한다. 자신의 좌절을 엄마에게 투사(Projection)해 '엄마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젖을 먹지 않고 깨물어 버리는 아기가 밉다. 이 마음은 원래 엄마에게 있던 마음이 아니라, 아기가 자기 마음을 엄마에게 투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기를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는 뻣대며 우는 아기를 안고 같이 운다. 이것을 심리학자 위니콧(D.W. Winnicott)은 '환경 붙들기(Holding environment)'라고 했다. 어쩔 수 없어서 아기와 같이 울고만 있는 엄마의 행동을 말한다. 그런데 이 무기력해 보이는 환경 붙들기가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준다. 갈등하는 엄마와 아기 사이에 '변화의 공간(Transitional Space)'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무엇인가? 혼자 울고 있던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밝은 전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밝고 따뜻한 빛에서 엄마의 따스함을 발견한 것이다. 아기는 다른 대상을 발견하고 그에게서 대신 만족을 얻을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도 내면적 성장이다.

이 성장은 생의 단계마다 일어난다. 특히 자녀가 청소년기일때, 이유 없이 부모에게 반항한다. 당하는 부모는 평소 말을 잘 듣던 아이의 행동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자녀에게 꾸중도 하고 달래도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것도 자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어찌하면 좋을까? 이 때는 '환경 붙들기'를 하며 자녀를 위한 '변화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 자녀에 대한 염려를 주님께 내려놓고 기도하자. 그를 안전하게 지켜줄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자녀에게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 간섭하고 자녀를 조종하려 했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그가 시간적,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자. 무슨 말이든 자녀가 하는 말을 비판 없이 끝까지 들어보자. 교정은 나중에 해도 된다. 일단은 마음을 열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그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있음을 인정하고, 나도 그를 어찌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품어 주시고 계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부모가 먼저 자녀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부모의 이 내면적 성장이 자녀에게 영향을 주어 자녀도 성장하게 한다. 자녀는 어느새 의젓한 부모의 친구가 될 것이다.

수능시험은 분명 자녀에게나 부모에게나 두려운 위기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성장의 기회다. 자신이 온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아직도 자기 중심인 삶에서 벗어나자. 자녀가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가족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초월한 세계의 하나님을 느끼고 그 분을 섬길 줄 아는 그런 아이로 성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수능이 변화의 공간이 된다면, 얻게 될 성적의 고하를 막론하고 값진 축복이 될 것이다.

황영태 목사 / 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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