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정기총회 김윤태 교수 특강<1>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9년 10월 10일(목) 20:35
선교와 교회일치: 응답해드리지 못한 기도



1. 교회일치 운동의 성서적 배경

1) 예수님의 기도문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 연합의 목적과 방향

연합의 주체와 대상은 성령과 그리스도인이다. 연합의 형태는 삼위일체적 연합이다. 연합의 성격은 영적 일치와 신앙 고백적 일치다. 연합의 목적은 복음전파(요17:21),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4:13), 거짓 교훈에 빠지지 않게(4:14), 연합의 궁극적 완성은 그리스도에게(4:15)이다.

2. 에큐메니칼의 정의

'에큐메닉스'라는 이름은 세계 땅끝까지 이르는 교회의 역사적인 사명과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의 하나 되기 정신을 찾는 학문을 지칭하는 말이다.

에큐메니칼의 어원은 헬라어 οικουμενε에서 유래된 말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the inhabited earth)이란 뜻과 함께 전 세상에 걸친 보편적인 교회(the Catholic Church)라는 기독교적인 뜻, 두 가지가 있다.

신약성경에서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ε)는 처음엔 제국을 뜻하는 거대한 정치적 단위체제로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ε: 세상)는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며, 참된 오이쿠메네 멜루사(οικουμενε μελλουσα: 장차 올 세상)는 영원한 것이다. 이 오이쿠메네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있는 변화된 오이쿠메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약성서에서 오이쿠메네는 선교적 말씀 선포의 공간으로(마24:14) 이해되다가 종국에는 그리스도 최후의 종말론적인 승리의 장(히2:5)으로 묘사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두 가지 방향은 첫째, Ecclesia ad intra (in relation to other churches)이다. 다른 교파 교회들과의 연합을 다룬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떤 교파/교회까지 참 교회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야기되며 주로 조직신학적, 교회론적 차원에서 논의가 된다.

둘째, Ecclesia ad extra (in relation to other worldly religions)이다. 타 종교와의 대화, 혹은 세상과의 관계를 다루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주로 선교 신학적 차원에서 논의가 된다.

3. 종교개혁 이전의 에큐메니칼 운동: 교리 일치를 통한 교회의 일치

1) 에큐메니칼 종교회의: 교리수호를 위해

AD 70년까지 모든 교회 연합의 중심부는 예루살렘 교회였다. 그러나 종족, 계급, 피부색깔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를 중재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 회의에서부터였다(행15). 그러나 지역과 문화, 사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헬라교부 신학과 라틴교부 신학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이후 교회는 에큐메니칼 회의를 통해 이단을 멸하고 교회의 통일을 도모하였다.

2) 대분열(The Great Schism): 동서 교회의 분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방교회는 서방 계통 성전을 폐쇄, 수도자들을 추방하고 불가리아 주교와 합세하여 교황의 오류를 공격, 교황을 파문하므로 1054년 7월 16일에 동서방 교회는 완전 분리 되게 된다. 15세기 터키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점령되자 소피아 대주교가 러시아로 피난한 후 러시아 정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집트, 시리아 등 14개국 교회가 연맹을 조직하였다.

4. 종교개혁 시대의 에큐메니칼 운동

1)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가들

개혁파의 분열이 있었다. 독일과 동북 유럽의 루터파, 쮜리히를 중심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와 남부 독일의 쯔빙글리파, 제네바를 중심으로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스코틀랜드, 네덜란드의 칼빈파,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 중심의 영국 개혁파, 재세례파: 서유럽의 대부분의 재세례파가 있다.

2) 종교 개혁가들의 분열과 일치 시도: 말부르크 회의 (1529)

1529년 말부르크에서 루터파와 스위스 개혁파 간의 연합을 모색하기 위해 모였던 회의다. 15개 토의 조항 중 14항에 모두 합의했으나 남은 1개의 조항인 성례관에서 루터파는 공재설을, 개혁파는 상징설을 고집한 끝에 결국 결렬되어 종교 개혁사에 오점을 남겼다.

3) 신구교 일치시도: 트렌트 회의 (1545)

1545년 독일 황제 찰스 5세의 제의로 교황 바오로 3세가 트렌트에서 소집한 회의로 황제는 교회 개혁으로 신구교가 연합하여 회교 세력인 터키에 대항하려는 정치적인 동기를 앞세웠고, 교황은 교리의 확정으로 신교를 비롯한 이단 박멸의 계기를 삼고자 했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수뇌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서 비타협적이며 신교의 언권을 봉쇄해버려 양측의 대결은 교황 측의 승리로 돌아가 카톨릭 교리를 재확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4) 30년 전쟁(1618-1648)

가톨릭 교도와 신교도들의 신앙과 교리로 인한 전쟁이었으며.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계속된 종교적, 정치적 전쟁이었다.



김윤태 교수 (대전신대/신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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