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못난 나무처럼

[ 목양칼럼 ]

서대일 목사
2019년 10월 04일(금) 00:00
대학교 1학년 때 3,4학년들이 주로 듣는 교육학 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다. 2시간은 교수님께서 이론 수업으로 진행하셨고, 1시간은 대학원생의 지도 아래 소그룹으로 모였다.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화요일 수업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석을 했지만, 소그룹 수업에 고학년들의 출석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에 하는 수업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는, 수업에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교수님 수업은 물론이고, 대학원생이 지도하는 시간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소그룹을 지도한 대학원생 누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는 했지만 수업 내용의 이해도 떨어지고, 때로 흐름을 깨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1학년이 참석해 괜히 소그룹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학기를 마무리할 즈음에 소그룹 안에서 롤링페이퍼를 적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기에 형식적인 격려의 내용들이 오갔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원생이 나에게 써준 내용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긴장하고 떨렸는데 꾸준히 참석해 준 나로 인해 힘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소그룹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참석한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보고 기뻤던 생각이 난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된다. 목회를 하면서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바쳐 교회를 섬기는 분들의 충성에 감동을 받는다. 그와 함께 예배와 섬김의 자리를 지켜 주시는 분들의 소리 없는 헌신이 큰 힘이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배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서 진행하는 훈련과 프로그램에 함께 하고, 청소나 애찬을 준비하는 자리에 항상 보이는 분들로 인해 힘들거나 지칠 때 힘을 얻게 된다. 최근 여러 사정으로 교회를 떠난 분들을 보면서 자리를 지켜 주시는 분들에 대해 고마움을 더욱 갖게 된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매끈하게 뻗은 잘 생긴 나무들이 목재로 사용되기 위해 베어져 나갈 때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한 나무들은 목수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남게 된다. 그다지 쓸모 없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 나무는 산을 찾는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주고, 산사태를 막아주는 귀한 역할을 한다. 오가는 새들의 아늑한 보금자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산과 동물들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존재가 바로 못난 나무다. 모두가 잘 생긴 나무가 되고자 하는 요즘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는 못난 나무처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르심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고 자격 없는 자임을 절실히 느낀다. 지금 맡겨 주신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부르신 지금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한 그루의 못난 나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날 자리를 지키느라 수고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서대일 목사/반석위에세우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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