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보다 하나님의 공의가 먼저

[ 주간논단 ]

장경덕 목사
2019년 10월 01일(화) 10:00
누구나 그렇겠지만 필자의 스마트폰 일명 카톡 방에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개의 단체 톡 방이 있다. 단톡 방은 뭔가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누군가 초대해서 함께 있다가도 나와 맞지 않다거나 엮이기 싫을 때는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교제하며 신뢰를 쌓아간다.

그런데 최근 단톡 방에서 금기사항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끼리라도 정치적인 얘기를 하다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그냥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온라인에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정치적 얘기는 무언의 금기 사항이 된지 오래다. 부자지간에도 정치 얘기를 하다 의견이 다르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에 서로가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정치는 피보다 짙은 것 같다. 누군가 말을 꺼내려면 조심스럽게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탐색한 후 같은 생각이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엄청난 비판의 소리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강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어느 사회나 정치적 견해를 갖고 여당이나 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정당인도 아닌데 의견이 다르다고 얼굴을 붉히면서 싸우려고 하는 우리네의 모습은 좀 지나쳐 보인다. 이를 조선시대 사색당파에서 근원을 찾는 사람도 있고, 해방 이후 공산체제와 민주체제의 양분된 상황에서 고착화되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지지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을 이용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것은 전문학자들의 몫일 것이고, 우리는 사회 정의적 측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진리의 안목에서 옳고 그름을 말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옳고 그른 것을 말하기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색의 안경을 끼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정치인의 잘못된 행위가 드러나도 지지하는 쪽의 사람이라면 변호하려한다. 반대로 아무리 옳고 선한 행동을 했어도 싫어하는 진영의 사람이라면 선한 행위 자체도 폄훼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옳고 그름을 전할 때, 선지자적인 관점에서 사회 정의를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듣는 성도들은 '지금 설교자가 어느 진영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쉽게 말해 '내 편인가? 적인가?'로 일단 금을 그어놓고 들으려는 자세이다. 이미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느 쪽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신앙보다 앞선 것이 진영논리가 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셔서 진리를 말씀하실 때, 보수주의자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비난한다고 예수님을 공격했고, 진보주의자인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을 오해함으로 공격했다. 아마도 이 시대에 한국교회에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셔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듯하다. 주님을 향해 '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라고 물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진영이면 예수님이라도 얼굴을 붉히며 가차 없이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시대에 엘리야가 오면 '왕을 공격했으니 야당이야'라며 여당 사람들이 그를 공격할 것이요, 이사야가 오면 그는 궁궐에 있었으니까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진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이제는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 있는 게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것은 나름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인 우리 예수님이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하는 얘기를 똑같이 한다면 우리 스스로 답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논리로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로 말할 때,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눈을 돌려 답을 듣고자 할 것이다. 그때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세상적 논리의 적용은 우리 스스로의 격만 낮출 뿐이다. 세상의 통합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움을 되찾을 때임에 틀림없다.

장경덕 목사/가나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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