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 서로 사랑

[ 주간논단 ]

이만규 목사
2019년 09월 24일(화) 10:02
"서로 사랑하라." 교회에서 참으로 많이 듣던 말이다. 그런데 이젠 이 말을 세상에서는 물론 교회에서도 거의 들어 보기 힘든 '옛 계명'처럼 되었다. 원래 '서로 사랑'은 우리 주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마치고 이 땅을 떠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이끌어갈 제자 공동체에 대하여 신경이 많이 쓰인 듯하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신앙고백을 확인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만찬을 베푸셨다. 발을 씻기시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하시고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 "서로 사랑 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닥쳐 올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이 복음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비결로 '서로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이 '새 계명'은 단지 윤리적인 계명이 아니라 생존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환란과 핍박이 와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보다는 내부의 균열 때문에 무너진다. 책임을 서로 추궁하고 원망하고 시비하고 미워하고 사랑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있다. 반 기독교적 문화와 정치권력, 기독교를 '혐오 집단이고, 적폐세력'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에게 이 나라 인권과 검찰 권력을 통제하는 전권이 주어줬다. 날로 세를 더해가는 이단들의 득세,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이나 국민정서 등 우리는 지금 사방이 적대세력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젠 교회 성장이니 부흥이니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실감나지 않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부흥은커녕 생존 자체를 염려해야 하는 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의 유일한 길은 다시 '서로 사랑'이라는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번 총회는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로 거듭나고 새 역사를 향한 획기적이고 자랑스러운 뉴스가 전해지는 총회를 기대하며 총회에서 이 '새 계명'이 새롭게 확인되고 새 계명으로 다시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무슨 대단한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총회,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을 회복함으로 이 난국을 타계하는 계기를 만드는 총회이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정의를 세우는 일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우리의 눈은 누가 옳으냐? 누가 잘못이냐"하는 정쟁으로 충혈되어 있다. 정의 없는 사랑이 무의미 하지만 정의를 세우겠다고 사랑을 마구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 옳다.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 옳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악하거나 불의하다면 차라리 해결이 쉽다. 모두가 다 일리가 있고 다 자기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해결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번 총회는 갈등과 대립의 추한 모습이,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교회의 약점을 찾고 있는 언론에 노출되어 교회가 무슨 혐오 집단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 날카로운 '의' 보다는 참아주고 양보하는 따뜻한 '사랑'이 더 힘을 얻기를 기대한다. 문제는 우리끼리 사랑하는 '서로 사랑'이다. 우리의 문제는 정의감의 부족이 아니라 '서로 사랑'의 부족함이다. 남들은 쉽게 사랑하면서 우리끼리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회봉사도 잘 하고 해외 선교도 잘한다, 남들 사랑은 부족함이 없는데 문제는 우리끼리 하는 '서로 사랑'이 부족하다.

주님은 '서로 사랑'을 난국을 해쳐 갈 '새 계명'으로 주셨다. 작은 자존심 때문에, 조금 더 잘 나고 의로운 척 하려고 '서로 사랑'을 잊어버린다면 교회는 무너진다. 옳은 것,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옳기 때문에 싸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서로 사랑' 우리끼리 먼저 사랑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 위험한 시대가 다가온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갈라지면 함께 무너진다. 총회가 무슨 대단히 자랑스러운 결정이나 온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결의는 못하더라도 낯 뜨거운 장면이나 안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자조적인 기대로 총회를 바라보기도 한다.

'서로 사랑'으로 교단을 세우는 총회이기를 기대한다.



이만규 목사/신양교회 원로·한국목회사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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