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울하다

[ 4인4색 ]

윤태혁 장로
2019년 09월 11일(수) 14:59
우리가 살아가면서 억울한 감정을 한번 이라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억울한 감정은 대부분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지만, 때론 자신의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경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고(事故)와 같은 예기치 못한 피해로 억울함을 겪는 경우, 또는 선행이나 배려를 베풀고도 오해를 받는 억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나온 역사 속에는 신분의 차이나 무지(無知)로 인해 억울한 피해나 고통, 불이익 등 역사 속으로 영원히 묻혀버린 수많은 사연들을 상상해 본다.

한동안 미투(Me Too)운동으로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억울함을 드러내고, 또 이로 인해 자신의 과오(過誤)가 세상에 드러날까 노심초사 가슴앓이 하며, 한편으론 배신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민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어느 유명 배우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속죄 하였고, 얼마 전에는 유명 앵커의 어처구니 없는 일탈과 또 다른 일부 유명인들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높게 쌓아 놓았던 결과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처절한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동안 너무나 큰 충격과 혼란스러움에 빠졌던 시간이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은 우리 곁에 수시로 다가오며 또 다른 피해로 연결된다.

자신과 가족은 물론 제2,제3의 피해와 말 못하는 억울함을 당했을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정신적인 피해는 또 얼마나 되는 것일까? 본인들의 깊은 반성과 사과로, 또는 법의 심판을 통한 단죄만으로 과연 마음의 큰 상처와 억울함은 치유 되는 것일까? 우리 사회 속에 이러한 일들이 휩쓸고 간 이후의 모습들을 돌아보며 우리는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개인들의 억울함이나 상처의 크기를 측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아픔과 억울한 일들은 삶의 질을 저하 시킬 뿐 아니라, 또 다른 억울함을 유발시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개인의 소중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존재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시회질서 속에도 결코 평등할 수 없는 경쟁사회의 구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억울함은 언제나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억울한 감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고통과 분노가 커지고, 때로는 엄청난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는 더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 억울한 감정과 분노를 낮추고 조절하며,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 지도록 바꾸어가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때로 빠르게 달려가는 직선 보다는 다소 늦을 수는 있지만 마음의 여유로움과 부드러움, 그리고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느끼는 곡선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억울함으로 발생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묘약을 찾다보면 결국 믿음과 소망, 사랑의 약 밖에는 없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나는 억울하다"는 감정을 용서와 화해하는 마음으로 바꾸어보는 지혜를 생각해 보면서 솔로몬의 명언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윤태혁 장로/전국장로성가단합창단협회 회장, 상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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