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눈으로 이웃과 자연을 바라본 빈센트 반 고흐

아트미션 '미와 영원'을 주제로 한 포럼 개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9년 08월 26일(월) 10:46
'석탄을 나르는 여인들'(1881년). 하루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해 질 녘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반 고흐는 교회와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그려놓음으로써 노동과 안식, 고통과 위로를 표현하고자 했다.
포럼에 집중하는 기독미술인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 바라본 것을 화폭에 담는 기독 예술가들의 작은 섬김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며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그가 떠난지 100년이 지난 후에도 감동을 주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지난 23일 기독미술가들의 모임인 아트미션(회장:이영신)이 '미와 영원'을 주제로 개최한 2019크리스천 아트포럼(C.A.F)에서 '하나님이 나를 보는 눈: 반 고흐의 농민화와 풍경화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발제한 라영환 교수(총신대)는 "그리스도께서 긍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신 것처럼 반 고흐도 긍휼의 눈으로 사람과 자연을 바라봤다"면서 "반 고흐 작품들에 광부와 농부, 가내 방직공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광부들과 같은 옷을 입고 광부처럼 살아서 성직자가 될 수 없었던 반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연약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의무를 일깨워주려고 했다"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살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반 고흐의 소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설교와 같다"면서 "반 고흐가 스스로를 농민화가라고 부른 것은 농민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 아니라 농민의 눈으로 농민을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라 교수의 주장은 고흐가 생전에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에서도 알 수 있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 평생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1885년 4월 30일 테오에게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할 것이고…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할 것이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로뎅의 비서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그의 그림에는 대상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아름다움이 드러나 있다"고 감동을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농민과 같은 사람들은 그림의 소재가 되지 못했고,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라 교수는 "예수가 가난한 자를 위해 헌신 하셨던 것처럼 반 고흐는 그림을 통해 가난한 자들을 섬기려고 했다"면서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재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김이순 교수는 '한국 기독교미술의 발아와 성숙'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기독 작가들은 보는 이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고 더 큰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보탬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독교미술로 불리려면 반드시 진실한 예술이어야 하며 회화나 조각의 형태로 이루어진 작품에 깃든 정신이 주를 증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기독 작품이라고 기독인에게만 감동을 주어서는 안되고, 작품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진실함과 역동성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이날 포럼에서는 '영원을 꿈꾸는 아름다움:기독교 미술의 텔로스'(신국원 명예교수), '몸, 현대미술과 기독교의 관정:예술의 성육신적 접근'(서성록 교수) 주제로 한 강의가 이어졌다.


최은숙 기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