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소망이다

[ 목양칼럼 ]

이광현 목사
2019년 08월 30일(금) 00:00
광복 74주년 기념 광복절. 온 국민이 'NO아베'를 외치며 일본제품불매운동을 일으키는 이 시점에 아이들을 데리고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아이들이 흥미로워 할까?'라는 초보적인 염려를 앞세우며.

그러나 역사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특히 군산이라는 도시는 더욱 그랬다.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이전부터 잦은 왜구의 침략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군대와 경찰 그리고 일본인 농장 지주들에 의하여 조직적인 쌀 수탈과 경제적 억압을 경험했으며,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경기불황으로 기업이 떠나가는 등의 아픔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이야기는 얼마 전 어느 방송사에서 '녹두꽃'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1894년 9월 녹두장군이라 불리던 전봉준에 의하여 일어난 농민군의 거병. 그러나 일본군의 무력 진압에 의하여 실패로 돌아간 사건. 이름하여 '동학농민혁명'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이런 질문을 했다. 일평생을 소작농으로 살며 부패한 관료들에게 한 번도 반기를 들어본 적 없던 순박한 백성들이 어떻게 세상의 불의에 맞서 일어서야겠다는 용기 있는 생각을 했을까?

당시 진압군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개 진의 아전과 백성들 대부분이 동학에 물들어…" 비록 이 사건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혁명의 배후에는 원인이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상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 것이다. 힘없고 연약했던 소작농들을 부패한 세상에 맞서도록 독려했던 사상. 구한말 경주의 몰락한 양반, 최제우가 서학과 천주교에 맞서기 위해 조선의 3대 종교, 유·불·선의 장점을 모아 만든 종교. 당시 부패한 정권과 관료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소작농들에게 이 사상은 그들의 마음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폈다.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다'.

그렇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교회개척 현장에서 겪는 딜레마가 이것이다.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고 말씀을 잘 가르치면 교회가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녀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각과 사뭇 다르다. 한번은 어떤 집사님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다시 자녀들이 신앙을 회복하고 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결혼도 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도 했다. 그리고 부모의 요청에 의해 어느 지역교회를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다.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가르쳐보지만, 삶의 변화는 없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주 쉽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SNS에 댓글 하나면 충분하다. "그 집 맛있던데?"

캐나다의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제임스 스미스는 '습관이 영성이다'(비아토르)에서 제자도의 핵심은 교육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무엇을 구하느냐?"(요 1:38). 예수께서 하셨던 "나를 따르라"는 말씀도 실은 "와서 나를 따르겠냐?"는 질문을 배후에 깔고 있다. 예수는 "네가 무엇을 아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오히려 "무엇을 원하느냐?"고 질문하신다. 제임스 스미스는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갈망과 욕구가 우리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늘 교회개척 현장에서 말씀을 붙들고 지루한 싸움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확신한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용기를 갖자. 개척현장에도 복음은 소망이다.

이광현 목사/의정부 뉴시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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