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 목양칼럼 ]

박대준 목사
2019년 08월 30일(금) 00:00
일 년에 네 번 진행하던 영성훈련 '예닮동산'을 마무리하고 주님 주신 풍성한 은혜로 인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3박 4일간 진행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차를 타려는 때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떤다. 대학 야구 선수로 있는 교회 장로님 아들 이름이 떠 있다. 순간 불안함이 머리를 채운다. 항상 내가 전화해서 잘 지내는지, 몸은 괜찮은지 묻곤 했지 이 녀석이 내게 전화를 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불안함을 진정시키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잠시 말이 없던 녀석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한 마디 하곤 울음을 삼킨다. 어쩐 일인가 물으니 직장에서 휴가로 가족들이 있는 전주로 내려가다가 논산 어디쯤에선가 빗길에 차가 미끄러져 사고를 당했단다.

어머니를 바꿔 달라 하고 자초지종을 듣곤 한밤중에 장로님들과 함께 전주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고인은 전주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년 전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자릴 잡고 본격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밥 먹자고 달려왔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형님 찾아 하소연 하듯이 달려와 푸념을 하기도 하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기도 했었다. 때론 교회 일을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함께 나눌 사역들과 기도 제목들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제 50대 초반이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늘 말이 많은 분이었다. 필자 또한 장로님과 함께 할 사역들과 시간들을 함께 꿈꾸기도 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에서 젊은 고인은 목회의 큰 힘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시간에 주님은 고인의 자리를 지워버리셨고, 목회의 계획들 속에서 고인의 책상을 빼 버리셨다. 다급한 마음에 밤 9시가 넘어 고인이 모셔 있는 전주로 가며 하나님을 향해 항의했다. '이건 반칙입니다. 장로님이 얼마나 큰 힘인데 이렇게 데려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대답 없으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장례식장에서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주님은 내게 대답 대신 단순한 신앙고백을 요구하셨다. '넌 누구를 믿고 목회 하는 거니? 네가 의지하는 지팡이가 내가 아니라 사람이었니?' 그 다음부터 장로님의 장례를 위해 매일 전주를 오고가며 내가 흘린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회개의 눈물이다. 내가 잡고 의지하고 있던 지팡이조차 치우시고 '나를 보라'는 주님의 음성이 계속 메아리쳤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젠 주님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한 주간을 이렇게 보내고 맞은 주일 아침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90세 되신 권사님이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떠오셨다. "이거 먹어요"라며 청심환을 입에 넣어 주신다. 힘겹게 보낸 한 주간임을 아시기에 걱정이 되셨나보다.

한 주간의 눈물과는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 솟구쳤다.

'주님, 맞습니다. 주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잡았던 지팡이를 놓고 주님의 손을 잡고 다시 강단에 올랐다.

박대준목사/여의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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