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성찰과 이웃 사랑

[ 주간논단 ]

김은주 교수
2019년 07월 16일(화) 10:00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로 하여금 인류를 구원케 하시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부언 설명한다. 더 나아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사랑은 기독교 정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 22:39)는 성서적 권고에서 자칫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네 자신처럼'에 대한 이해이다. 즉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에 해당하는 부분인 "네 자신처럼" 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먼저 잘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므로 결국 신앙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이미지대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정확하게 인지할 때 자신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이미지를 지닌 다른 사람에게서 그 존귀함을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이웃의 존엄성과 권리를 인식하는 것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나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시즘이 결코 아니다. 온 땅에 흩어져 타인과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구축하며 하나님께 도전한 사람들, 그에 상응한 결과로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된 바벨탑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온 세상이라는 더 큰 공동체와 더불어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타인과 그리고 더 큰 공동체와 잘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자신을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직적 구조를 지닌 공동주의는 구성원들 사이에 동등성이 아니라 낮은 자존감을 조장할 수 있다. 이런 공동체감은 자아 경계(boundary)를 흐릿하게 만들고, 그래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로 자신을 쉽게 투사하기도 한다. 이에 덧붙여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자신의 신앙 문제도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들며 결국은 매일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일상의 문제들을 스스로 신앙의 관점에서 잘 풀어내지 못하게 되어 개인의 신앙 성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앙 성숙은 일방적 의존 관계가 아닌 사람들 간의 상호관계에서 발생한다.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적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및 판단에 귀를 기울이고 정당화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마치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 체 그저 누군가를 따라하는 신앙생활처럼…. 신앙 성숙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구별은 꼭 필요하다. 타인과 공동체와 긴밀히 연결되기 위해서 잘 구별된 자아,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훈련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내가 누구인줄 모르면서 어떻게 타인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타인을 향한 사랑이 개인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구별된 관계성이리라. 인간의 존엄성과 동등성에 기초한 자신에 대한 진정한 발견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인이 되어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김은주 교수/한일장신대 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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