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의지를 더하다

[ 목양칼럼 ]

이후재 목사
2019년 07월 19일(금) 00:00
열정은 마음의 언어이고 간절함은 몸의 언어다. 열정이 몸을 만나면 믿음은 세상을 이길 힘을 얻는다. 쇼펜하우어를 의지의 철학자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의지는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의지는 매우 주관적이다. 그런 의지가 외부로 발현되어 객관화 되는데, 객관화의 최고 단계가 바로 우리들의 몸이다. 의지를 강하게 품고 있는 몸을 이길 힘은 세상에 없다. 의지는 강하다.

아흔이 훌쩍 넘어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께서 귤 밭을 향한다. 그 경이로움이 내 영혼의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세월을 붙잡을 수 없어 이마에 시간의 흔적이 선연하지만 할머니의 의지는 시간을 거슬러 밭을 향한다. 의지를 품고 있는 몸이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농사의 고통이 온 몸에 훈장처럼 배어 있는 동네 할아버지께서 예쁜 집을 지었다. 그런데 초라한 움막에서 여전히 일상을 보낸다. 세월을 이겨낸 할아버지의 몸은 좋은 집과 허름한 집의 구분을 무력화시켜버린다. 의지를 품고 있는 몸은 이미 공간 헛됨을 완벽하게 자각한다. 의지를 품고 있는 몸에서 세상을 이길 힘을 만난다. 의지는 힘이 세다.

한 과부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재산을 몽땅 빼앗긴다. 성전 예배의 시간이 다가오자 과부는 무너져 가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다. 동전 두 개를 발견한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성전을 향한다. 재산을 빼앗은 서기관들의 괴이한 폭력이 성전을 향한 과부의 선한 의지를 이기지 못한다. 성전에는 가산을 빼앗은 자들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흉악한 악의 세력이 과부의 빛나는 발걸음을 막지 못한다. 과부는 두려움을 뚫고 성전에 들어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다. 가진 전부를 넣었다고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셨다. 두 렙돈은 과부의 선한 의지가 객관화된 몸 전체였던 것이다. 성전을 향한 의지가 완벽하게 몸과 합체한 것이다. 재산을 잃어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성전을 향한 불타는 의지이다. 의지와 일체화된 몸은 힘이 세다.

시골 허름한 예배당, 9명의 성도, 목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내와 함께 예배당 안팎을 깨끗이 닦고 예쁘게 칠했다. 그리고 시작된 예배. 간절한 의지를 몸에 담아 매주 열다섯 번의 예배 - 새벽예배, 매일저녁기도회, 수요오전예배, 수요저녁예배, 금요성령집회, 주일 1,2,3부 예배, 주일오후예배는 멈추지 않았다. 미친 열정과 간절한 몸이 주께 드릴 수 있는 전부였다. 비가 세는 예배당을 예배로 극복하고 싶었고, 오래된 부흥의 기억을 열정으로 극복하고 싶었다. 간절함이 짙게 밴 의지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싶었다. 몸은 부셔지고 으깨졌고 영혼은 기뻤다. 지금도 무너져가는 예배당을 작은 몸으로 아주 세게 세우는 중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이니라." 몸은 의지의 집이다. 몸으로 오르신 그분의 십자가 속에서 객관화되어야 할 나의 의지를 본다. 의지가 객관화된 몸으로 예배하면 어디에서나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의지는 힘이 아주 세다. 믿음에 의지를 더한다.

이후재 목사/저청중앙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