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강의 추억

[ 4인4색 ]

이규환 교수
2019년 06월 26일(수) 10:00
고등학교 2학년 음악시간에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이란 왈츠 곡을 배웠지만 그때는 다뉴브 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2006년 여름 헝가리에 갈 일이 있어 프랑스 파리와 체코 프라하와 더불어 '유럽 3대 야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야간 유람선을 탄 적이 있다.

강 양편으로 펼쳐지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황금색 조명을 받아 마치 거대한 야외 박물관의 조각품인 양 시야에 들어왔다. 다뉴브 강 물결은 그야말로 말 없이 흐르고 있었다. 머르기트 다리 밑을 지나 헝가리 국회의사당, 부다 왕궁, 페퇴피 다리를 거치는 도중, 흥이겨운 분위기에서 안내자가 "'다뉴브 강의 잔물결'의 노래를 아는 분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때 아무도 나서지 않아 내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자 주위 모든 사람들이 열화(?)같이 그 노래를 불러줄 것을 청했다. 나는 거의 음치에 가까울 정도로 노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주저했지만, 분위기에 물들어 불렀고 다행히 40년 가까운 세월은 지났지만 노래말은 정확히 기억이 났다.


어스름 달빛에 안개는 끼고
고이 잠드는 깊은 밤 하늘에
물결 잔잔한 다뉴브 강 물결은
소리도 없이 흘러만 가는데


노래를 다 부른 후 이렇게 큰 박수를 받은 적은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 내게는 그날 밤이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 헝가리를 또 갈 기회가 있었다. 이때 뜻밖에도 헝가리인들의 조상이 우리 한(韓)민족의 뿌리인 몽골 투르크족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태어나는 아기의 등과 엉덩이에 우리처럼 몽골반점이 있다고 한다. 언어 역시 우리와 함께 우랄알타이어족으로 어순이 비슷하고 언어에 관사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헝가리(Hungary)는 유럽에서는 매우 드물게 훈(Hun)족으로 원래 아시아 북동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유목생활하는 북방계 기마민족이다.

우리 한민족 역시 북방계라는 것이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 금관, 황금보검, 기마인물형토기 그리고 천마도가 그려진 자작나무가 시베리아산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의 저서 '역사의 비밀'에서는 훈족의 조상을 아시아동단 한민족이라고 기술했다. 미국의 다큐멘타리 채널 디스커버리(Discovery)와 독일의 공영방송 ZDF에서는 훈족을 고구려에서 뻗어나온 세력이라고 방영한 적 있다. 훈족의 위협으로 게르만족이 이동을 하게 되었고, 게르만족의 남하로 476년,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역사를 보면, 한 때는 훈족이 세계사에 중심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중국의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사관에 길들어져 훈족(흉노족)을 오랑캐로 불러왔으니 우리 조상을 우리가 욕한 우를 범하고 있었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할 때 가장 마음 편한 나라가 헝가리임을 느낄 수 있는 데, 이는 이런 민족적 동질성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5월 29일 한국 관광객 33명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다뉴브 강에서 크루즈선과 충돌하면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7명만 구조되고 나머지 모두가 사망, 실종되는 참사가 생겼다. 안타까운 것은 나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 준 다뉴브 강이자 우리 민족과 동질성이 깊은 헝가리가 이번 일로 끔찍한 악몽을 남겨주어 한국인들에게 야속한 다뉴브 강, 헝가리로 각인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규환 교수/ 중앙대 전 행정대학원장 겸 정경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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