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취소결의, 전쟁이 이끌어 낸 참회

본보 아카이브 통해 역사의 흐름 드러나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9년 06월 18일(화) 14:06
1954년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신사참배결의 취소가 6.25전쟁의 고통에서 비롯된 참회였음이 본보 '디지털 아카이브(Digital Archive)'를 통해 명확해졌다.

휴전 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신사참배결의 취소는 1954년 4월 26일 이뤄졌다. 당시 교단 총회는 매년 4월에 열려, 1954년 제39회 총회는 휴전 후 첫 총회였다. 해방 이후 분단돼 있던 남북 교회가 공식적으로 한자리에 모인 역사의 현장이었으며, 이어지는 민족 수난과 교회 분열로 참담했던 총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자리였다.

7월 휴전 후 해를 넘겨 신사참배결의가 취소됐고, 또 그 사이 9월에 총회가 열렸을 것으로 오인해, 그 동안 6.25전쟁과 신사참배결의 취소의 연관성엔 무게가 실리지 않았지만, 당시 본보의 기록들은 취소 긴급동의로부터 성명이 발표되기까지, 총대들이 직접 겪은 전쟁의 아픔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기독공보는 일제 치하의 아픔을 씻어내고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 부흥을 견인하려는 교회들의 몸부림으로 탄생했다. 첫 이름은 '기독교공보'로 타블로이드판 신문이었지만, 1948년 제호를 '기독공보'로 바꾸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발행이 중단됐다가 1951년 복간됐고, 이후 1954년 교단지로 인수되지만, 1966년 시설미비로 정간됐다가 다시 1970년 현재의 제호로 복간됐다.

본보는 현재 73년 역사의 종이신문을 디지털화하는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로쓰기, 한문혼용, 지질훼손 등으로 판독이 어려운 1946년 창간호부터 최신 신문까지, 제목은 물론이고 본문까지 모두 텍스트화하는 이번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독자들은 총 4만여 쪽에 달하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언제 어디에서나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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