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 받기 이전과 이후의 베드로

[ 가정예배 ] 2019년 6월 10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인순 목사
2019년 06월 10일(월) 00:10
김인순 목사
본문 : 사도행전 3장 1~10절

찬송 : 421장



조화와 생화의 다른 점은 생명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다. 요즈음 얼마나 기술이 좋은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보지 않으면 조화와 생화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구걸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본다. '주목' 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모습을 '쳐다보다'라는 단어의 원형과 동일하다. 베드로와 요한은 왜 주목하여 보았을까? 자신과 동일하게 예수님의 긍휼이 필요한 한 인격이요 영혼임을 본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시각을 갖기를 원하신다.

무언가를 얻을까 바라보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이 아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노니 일어나 걸으라"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다. 40년을 앉아 있던 자가 뛰고 걸으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앉은뱅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시적 필요를 채우는 한 푼 돈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원 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모여온 자들에게(6~11절)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로 난 믿음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16절)고 선포한다. 이 복음을 듣고 오천 명이나 돌아온다. "내 양을 먹이라"고 디베랴 호수에서 부여하신 사명이 '성령충만'으로 시작된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베드로 안에 있는 증거가 바로 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인 것이다.(요15:7) 이 사건으로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위협을 받지만 굴하지 않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4:12)"고 말하며 또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19절)"고 하며 담대하게 예수를 전한다.

성령의 권능을 받기 전 베드로는 영적 앉은뱅이나 다름없었다. 두려움으로 인한 상처와 좌절의 열매만 있던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주님과 함께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된 결과 예수님의 심장으로 고통 받는 영혼들을 보며 죽은 자를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거룩한 도구가 된다. 믿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삶 속에서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에 권능이 임하고 영도 살고 육체에 치유와 회복이 임한다. 인간을 만드신 주님을 만나면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게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사모하자.

오늘날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별거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별거하고 있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고 착각하고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화처럼 모양만 그럴듯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에 권능이 임하고 영도 살고 육체에 치유와 회복이 임한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충만하여 생명력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인순 목사 / 주님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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