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9년 06월 06일(목) 14:05
2. 신앙과 경제

(1) 선교활동 지원

여전도회는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 필수적인 경제적 지원을 위하여 다양한 사역을 펼쳐왔다.

1988년 9월 본회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으로 10년 동안 20명의 선교사를 파송키고 결의하고 해외선교회원 모집을 위한 3차년도의 계획을 세웠다. 제1차년도(1989~1991)에 5명, 제2차년도(1992~1994)에 5명, 제3차년도(1995~1998)에 10명의 파송계획을 위하여 '300달러, 200달러, 100달러 회원'을 모집하였다. 또한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울여대 대학교회를 건립하기로 결의하고 1인당 5만원 회원 2만 명을 교원선교회원으로 모집하여 10억 예산을 충당하였다.

1990년 9월에는 자녀 선교 회원제도를 시작하여 영아 선교 회원의 때를 놓친 6세부터 결혼 전까지의 자녀들에게 '보내는 선교사'의 의식을 주지시키며 평생 1회 회비 5000원을 내며 참여하도록 하였다. 60세 이상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수연 선교 회원제도 주목할 만한 제도이다. 60세 이상 된 회원들이 평생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여생을 선교 사업 확장에 뜻을 두고, 특히 국내 농어촌 선교를 지원하기 위하여 평생 1회 6만원을 헌금하기로 하였다. 때로는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기념헌금으로 대신 납부하기도 하였다. 1990년 10월부터는 전국연합회나 지연합회의 증경회장들이 회장으로서의 중책을 감당하면서 발휘했던 지혜와 능력을 활용하여, 다시 해외 선교 사업의 한 몫을 감당하자는 목적으로 옥합선교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첫 사업으로 15만 달러를 준비하여 1992년 4월 23일에 필리핀 마닐라에 다목적 선교 센터를 건립했다. 두 번째 사업으로 볼리비아의 박광석, 정성현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2) 통일선교 기금 마련

여전도회의 민족통일선교정책연구소는 모든 집회의 예배 시 모아진 헌금을 통일선교기금으로 마련해 두기로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민족의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교회여성'으로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1992년에는 53연합회가 사랑의 쌀을 모아 북한 동포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600만원을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에 보냈다. 1993년부터는 전국의 여전도회원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성미를 모으는 심정으로 '통일 성미 한 말 모으기 운동'을 펼쳐 기존의 통일선교기금 1억 원과 함께 차근차근 준비해 가고 있다.

3. 신앙과 사회복지

(1) 농어촌 교회 지원

1993년부터 여전도회는 농어촌 교회 지원을 열 곳으로 확장하고 여전도회관 수익금 중 3000만원을 농어촌 선교를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효율적 지원을 위하여 벽지, 어촌의 어려운 교회들을 인근 연합회와 연계하여 보살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조사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현실은 조사 연구 후의 실천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인식하여 여전도회는 구체적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예컨대 농어촌이 농축수산물 수입 개방으로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여전도회는 농촌을 돕는 직거래 운동을 펴 연 2회 우리 농산물 장날을 여전도회관에서 개설하고 있다. 이것은 농촌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실천적인 노력이며 도시 교회와 농촌 교회의 간격을 좁히려는 의지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2) 장애인 보조

하나님 나라 선교를 지향하는 여전도회 리더십은 작은 자를 향한 섬김을 항상 선도적으로 실천하여 왔다. 이러한 섬김은 1982년부터는 온양 농아학교의 채은하 전도사의 사역 후원으로 지속되었다. 구체적으로는 농아학교 건립을 위한 대지구입비 1000만원을 보조하여 농아학교가 이전하고 창립 6주년 예배를 드릴 때 기념품을 전달하였다. 장애인과의 구체적 만남을 통하여 작은 자의 이웃이 되는 체험은 여전도회 리더십과 문화에 '작은 자를 향한 섬김'이 핵심 주제와 내용으로 자리하는 토대가 되었다.

(3) 미혼모 보호

'작은 자와 함께'하는 여전도회의 리더십과 문화는 1984년부터 애란원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애란원은 반피득 선교사의 부인 애란 여사가 설립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운영해 오다가 그가 귀국하면서 총회의 사회복지법인의 위탁한, 미혼모와 아기를 위한 시설이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편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혼모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며, 현재와 미래의 과제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여전도회 리더십을 이 사역으로 인도하였다. 더욱이 복음적 관점에서 교회는 사회에서 버림을 당하고 소외된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호하고 인도하여 새 삶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선교적 사명감이 이 사역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전도회는 미혼모들을 보호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상담, 의료 혜택, 탁아 혜택, 교육 혜택, 무료 숙식 보호 등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도우며 격려했다. 정부의 협조와 총회의 운영으로 자립이 가능해지자 보조를 중단하고 1986년에 전남 해남군 고당리 마을에 영아 40명을 위한 탁아소를 설치해 주는 일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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