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인가, 마음인가?

[ 주간논단 ]

조택현 목사
2019년 05월 28일(화) 10:00
마음은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다. 사람의 모든 것이 싹터 나오는 근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감정은 쉽게 바깥으로 드러나지만 그 감정의 발원지인 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 마음의 소유자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알 수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말들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유독 사람의 마음에 관심하신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 것이 어떤 상태인지 주목하신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을 때 그 중심이 무엇이겠는가? 중심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레바브'의 뜻은 마음이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마음에 머물러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아무에게나 자기 속내를, 즉 자기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마음은 내적 은밀함을 갖는다. 그러나 마음의 소유자와는 툭 터놓는, 허물 없는 관계를 가진다. 양심 있는 사람과 양심 없는 사람이 있다. 양심 있는 사람은 솔직한 마음을 자기 신앙과 삶의 중심으로 삼고 그 마음에 자기 삶을 맞추어 간다. 양심 없는 사람에게서 마음은 자기가 하는 말과 행위와 삶의 노예로 부려진다. 일단 행동한 다음 그 행동에 마음을 맞추어 가다 보니 자기합리화와 자기변명이 계속하여 작동된다.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마음이란 공간에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지 그것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믿음은 마음을 그 터로 삼는다. 마음과 동떨어진 믿음은 이상한 믿음이 되고 말 것이다. 믿음과 마음이 다르게 되면 겉과 속이 다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믿음은 좋게 보이는데 정작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믿음은 허구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의 그 첫 단어를 마음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공간을 너희 안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마음을 가리키신 것이리라.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하였다. 믿음과 의로 가는 길의 첫 출발점에 마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믿음과 마음의 관계를 살펴보자. 믿음은 마음의 터 위에 세워진다. 그 믿음이 마음을 강화시킨다. 그 때 믿음은 마음이라고 하는 주관성 위에 세워지는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믿음은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객관적인 것이요, 그 믿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사람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믿음은 마음을 변화시켜 나가는 동력이요 힘이다. 마음이 믿음을 받아들일 때 이내 회개하고, 거듭나고, 그래서 변화되는 생명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생각해 보건대 진정한 회개, 진정한 거듭남, 진정한 변화가 무엇일까? 믿음으로써 회개하고 거듭나고 변화되는 것이라고 생각들 할 수 있지만 바야흐로 그 근본에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마음을 찢는 회개라는 말이 맞지 믿음을 찢는 회개라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 거듭남과 변화 역시 마음보다는 믿음에 방점을 찍으면 자칫 그 중심과 근본을 놓치고 만다. 하나님은 바로 사람의 중심, 즉 마음을 보시기에 말이다.



조택현 목사/광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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