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야채가게' 사장된 목사

[ 이색목회 ] 김혁 목사, 청년 꿈 돕고자 시작한 야채 장사가 교회 공동체의 꿈 돼, 가게는 주민들의 쉼터로 변모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9년 05월 31일(금) 07:49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선한 과일과 야채로 당신의 청춘을 돌려드려요. 맛있는 과일을 정직하게 공급하다 보니 주민들의 기쁨은 배가 됐습니다. 설교만 할 때는 몰랐는데 장사를 시작하고 사장이 되면선 주민들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됐죠."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7블록. 주택가 상가 1층에 자리 잡은 '청춘야채가게'. 그 가게 사장이 '일산아지매'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당도 높은 과일, 신선한 야채를 정직한 가격에 공급하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네이버 밴드 '청춘야채가게'엔 주문 요청이 쇄도한다. 온라인 단골 회원만 450여 명을 넘어섰다. 댓글은 칭찬 일색이다. 신선함에 예민한 주부들의 특별한 자랑거리가 됐다. 회원들이 "언제나 맛있는 과일로 기쁨을 주는 청춘야채가게 감사해요"라고 고마움을 표현할 정도니 말이다.

이쯤 되면 청춘야채가게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가게 문을 열었다. 신선한 과일 향이 코를 자극했다. 손님을 맞는 사장의 친절함은 과하다 싶을 정도다. 과일, 야채를 정리하는 손길 또한 꼼꼼하다. 인색하지 않았고, 사랑과 정이 넘쳤다. 가게 운영 방식을 '계산하지 말자'에 맞춘 사장의 경영철학이 마음으로 다가왔다. 이제 지역 주민들에게 청춘야채가게는 없어선 안 될 장소가 됐다. 한 주민은 가게가 아닌 '청춘야채가게 사장'이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설교만 하다가 과일 야채 장사를 시작한 사장, 그 귀한 분은 '목사'였다. 서울서북노회 변두리교회를 시무하는 김혁 목사(50세). 김 목사는 2017년 일산에 교회를 개척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도 역임했다. 하지만 목회의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작은 교회를 택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힘없이 시작했다. 한 때는 예배드릴 공간이 없어 인근의 지역 교회 예배당을 처소 삼기도 했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체계적이지도 않았지만 김 목사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도 김 목사에겐 고민이 있었다. 교회 창립 구성원 중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업을 포기한 집사 부부와 직업을 구하고 있던 한 청년이 늘 기도 대상이었다. 상담을 진행하던 김 목사는 청년의 꿈이 '야채가게'를 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교회 개척에 나설 때 다짐한 '작은 자와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되새기며 청년의 꿈 실현을 돕기로 결심했다. 변두리교회 김 목사와 온 성도들은 힘을 모았고, 2017년 생활형자립공동체 형태의 '청춘야채가게'를 오픈했다. 한 청년의 꿈을 돕고자 내민 김 목사의 손길이 청춘야채가게의 출발이 된 셈이다.

하지만 장사는 녹록지 않았다. 주변 목회자들은 '무모한 짓'이라고 만류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첫 달 매출이 30만원이었다. 매출보다는 청년의 꿈이 중요했기에 장사를 지속했지만, 오픈 8개월이 지나자 오히려 청년이 '장사가 적성이 아닌 것 같다'며 다른 길을 택했다. 상가 계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당장 가게를 접을 수도 없었다. 떠난 청년의 자리를 누군가는 메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고민 끝에 김 목사는 청춘야채가게 사장에 이름을 올렸다.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직책을 갖게 됐다.

결국 김 목사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매출은 적었지만,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명절에는 과일바구니를 만들어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이 더해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장사라곤 해본 적 없는 목회자에게 청춘야채가게 사장은 극한직업과도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대안은 '정직'이었다.

김 목사는 "목회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 사이에 청춘야채가게는 정직하다. 믿을 만하다. 착하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며 "오히려 신앙이 없는 마을 주민들이 청춘야채가게가 공급하는 맛있는 과일과 신선한 야채를 통해 기쁨을 얻고 있다며 좋아해 주셨다"고 말했다.

김 목사의 정직은 신뢰를 쌓고, 신뢰는 사랑을 낳았다. 청춘야채가게는 어느덧 과일 야채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마을 주민과 사랑을 나누는 쉼터가 됐다. 몸이 아픈 주민,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주민, 직업이 없어 고민하는 청년,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주민이 과일과 야채를 사러 왔다가 사랑까지 챙겨갔다. 그 사랑 안에는 복음의 씨앗도 심겨져 있었다.

이제 청춘야채가게 하루 매출은 1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안정화 됐다. 마을 안 식당 10여 곳에는 도매로 야채를 제공할 정도로 역할도 커졌다. 넉넉하지 않지만 판매 수익금은 지역 교회와 함께 운영하는 기독교 대안학교 운영비, 성도들의 자립을 돕는 지원금, 김 목사 가정의 생활비 등에 쓰이고 있다.

최근 김 목사는 가게의 매출 목표를 200만원으로 상향했고 청춘야채가게 2호점, 3호점도 오픈 할 수 있도록 기도 중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경제적 어려움에 있는 성도 다섯 가정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도 갖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청춘야채가게가 주민들에게 맛있는 과일과 신선한 야채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주민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되면서 그곳이 또 다른 복음의 접촉점이 되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목회자로서 하나님이 만드신 과일과 야채를 판매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며 "이제 교회가 교회 안의 성도만 양육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성도들의 삶이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도 성도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청춘야채가게 사장이 된 특별한 경력을 가지고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메시지도 전했다. 그 때 후배들을 향해 전했던 진정어린 당부를 재차 소개하며 "욕망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통해 꿈을 반영한 사역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청춘야채가게를 통해 변두리교회가 마을 안에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진정한 로컬처치가 되어 주민과 함께 마을의 특색에 맞는 교회가 되는 데 더욱 집중하겠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청춘야채가게 사장이 된 김혁 목사가 바라고 꿈꾸는 목회이다.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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