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보면 하나님이 미워하시겠죠?

[ 현장칼럼 ]

정혜민 목사
2019년 05월 20일(월) 00:00
서울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수업을 끝내고 교실 밖을 나가려는데 한 학생이 쭈뼛쭈뼛 다가와서 상담을 요청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도 잘하고 꽤 성적도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모범생으로 통하는 학생이었다.

"선생님. 요즘 공부가 잘 안돼요."

이 말만 듣고 나는 민호(가명)가 성적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이어서 민호(가명)가 꺼낸 이야기는 정말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민호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야동중독에 빠져 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야동을 보게 됐다고 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습관처럼 보고 있다고 했다. 하루라도 야동을 보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중독이 돼버려서 이제는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두렵다고 했다. 단순히 야한 영상에 중독된 철없는 남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감춰진 민호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보여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현장에 있으면서 이렇게 야동중독에 빠져있는 친구들을 정말 많이 만난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3학년 친구가, 요즘엔 VR로도 야동을 본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 보면서 '와! 야동 계에도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났구나'하며 씁쓸하게 웃었던 적도 있다. 이런 현실은 구체적인 통계 자료로도 드러나고 있다.

2016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들(초4~고3)을 대상으로 2년마다 매체이용과 유해환경에 관한 실태조사를 하는데 지난 2016년에 나온 자료를 보니 그 결과가 아주 놀라웠다. 최근 1년 동안 성인용 영상물을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이 41.5%, 성인용 간행물을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은 22.0% 라고 했다. 이 수치도 꽤 높은 건데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성인물 영상과 간행물을 이용한 초등학생(초4~6)의 비율이 2014년과 비교해 봤을 때 각각 2배, 4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여기서 또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야동의 문제는 단순히 사춘기 자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젠가 교회의 중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고민상담 시간에 한 장로님께서 본인의 오래된 야동중독 문제를 솔직하게 오픈하신 적이 있었다. 이것은 신학생들도, 현장에서 사역하고 계신 사역자분들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성에 대해 보수적인 교회에서 이런 문제들이 자주 나타나는 걸까.

교회는 그동안 성교육을 할 때 항상 성경 몇 구절을 예로 들면서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보면 안 돼! 그러면 안 돼!'라고 율법적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이미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부분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교회 다닌 사람이라면, 교회에서 성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그 결론을 다 예상하고 듣지 않는가. 이렇게 지나친 문자적 해석과 함께 율법적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의 성교육은 오히려 교인들의 성(性)인식을 더 왜곡시키고 병들게 만들었다.

우리가 야동에 대해 말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사춘기 때 야한 영상이나 웹툰, 글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사춘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때 동시에 심리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이 때 성적 충동과 호기심이 올라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내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말 그대로 '중독'에 대한 부분이다. 어쩌다 한 번 보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찾아보고 있다면 이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중독에 빠져있는 것이다. 중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야동을 끊어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야동, 야한 웹툰을 그만 봐야 하는 수 만가지의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들이 사랑의 의미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냥 쾌락'이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 사랑하면 진한 스킨십과 섹스가 당연히 동반된다는 공식을 세뇌시킨다. 이것은 나중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를, 그녀를 진짜로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사랑에는 다양한 정의와 모습들이 있는데 이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랑을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으로만, 쾌락으로만 여기도록 만든다. 이렇게 모든 것을 성적인 문제로 몰고 가는 태도는 인간관계를, 더 나아가 사회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 습관적으로 야동 창을 클릭하고, 야한 웹툰의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들이 점점 쌓이면 쌓일수록 진실된 사랑을 하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야한 생각에 병적으로 집착한다거나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될 정도의 호기심이나 나쁜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인 반응들을 건강하게 이해하고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건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이런 자연스러운 반응을 넘어서 집착과 금단 등의 심각한 중독증상을 보인다면 반드시 주위의 믿을 수 있는 어른이나 전문가에게 상담을 요청하길 당부한다.

정혜민 목사/브리지임팩트 성교육상담 센터장·기독교중독연구소 청소년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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