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평안을 깨자

[ 땅끝편지 ]

김태준 선교사
2019년 05월 21일(화) 00:00
독일남부지방한인교회 성탄절 예배 모습
독일 한인디아스포라 목회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처음 3년간은 허니문 기간이었다. 목사도 교인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서로에게 친근히 다가서려 노력했다. 나 역시 독일사회와 한인교회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낯선 환경은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목회만큼은 내가 전문가라는 확신 속에 한국목사로서 목회를 관철시켜 나갔다. 토요새벽기도회도 격주에서 매주로 바꾸었고, 예배 후 30분간 개인기도시간을 가졌다. 강단에서 무릎 꿇고 소리 내어 기도했다. 또한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출석을 강조했다. 내가 지닌 기준은 분명했다. 새벽기도 출석은 주일예배 출석의 10%가 일반이다. 그 이하면 기도 안하는 교회로 분명 문제가 많거나 죽은 교회다. 새벽기도를 강조하고 매달 첫째 주에는 온가족아침잔치라는 명목으로 자녀들과 함께 새벽기도회에 나오도록 독려하고 아침식사도 함께 나누었다. 참석자가 십여 명에서 사오십명으로 늘었다. 장소도 교육관에서 본당으로 옮겼고, 주일 출석 대비 25%가 새벽기도회에 나오게 되었다. 수요예배도 마찬가지다. 일반 기준은 20%이다. 이 기준을 넘어서고자 찬양팀을 세워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늘렸다. 말씀도 좀 더 진솔한 성경강해로 전했다. 지금은 참석하는 인원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교인들의 비율이 높아지면 교회는 은혜가 넘치는 법이다. 예배에 집중하고 은혜 넘치는 예배 분위기를 만드는데 꼬박 6년이 걸렸다.

김태준 선교사 아내 김은아 선교사가 진행한 성경방 종강모임의 모습.
오래된 교인분들은 한국식 목회에 거부감이 컸다. 해외살이도 힘든데, 교회에서도 열심을 내라고 다그치는 것을 불편해 했다. 우리집 두 아이를 수요저녁예배에 참석시키니 권사님들이 말릴 정도였다. "목사님, 아이들 내일 아침 학교 가야 하는데…"

허니문이 끝난 3년에서 5년 사이에는 갈등도 심했다. 독일이나 독일교회는 평안히 굴러간다. 한국에서 보자면 '저녁이 있는 삶'이다. 안정적인 시스템이 자리하여 사회가 느리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느긋함에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의 태도에 교인들도 불편해 했다. '목회가 평안해야 하는데...' 갈등의 시절 2년간 진지하게 고민했던 주제였다. 하지만 결론은 분명했다. '평안의 결과가 영적인 무기력과 나태함이라면, 이것은 깨야 한다!' 거짓 평안을 깨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서로 아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아픔을 이겨내게 하셨고, 그 뒤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가정들을 많이 보내주셨고, 부부사랑방이라는 모임을 통해 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켜 주셨다.

교회의 변화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로 사역했던 아내 몫도 컸다. 엄마들의 요구로 마더와이즈반을 만들어 신앙과 삶을 나누었다. 모임 때마다 매 번 은혜가 쏟아졌다. 그 후 작년부터 아내는 성경방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어 성경이 읽어지네' 강좌로 성경을 가르쳤다. 처음으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니 교인들은 신나했다. 설교말씀도 제대로 들린다고들 한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 앞에 하루하루의 성실을 쌓아가다 보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누가복음 8장 15절의 말씀을 늘 되새겼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을 붙잡고 견디면서, 추수 때까지 변치 않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견딜 뿐이고, 추수는 하나님이 하신다.

김태준 목사/독일남부지방한인교회·총회파송 독일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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