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 주필칼럼 ]

변창배 목사
2019년 05월 17일(금) 10:00
문용동 전도사는 제101회 총회에서 총회 순직자(제5호)로 지정되었다. 광주동노회가 문 전도사 순교자 추서를 헌의하자 총회 순교순직자심사위원회 심의를 통하여 순직자로 결의한 것이다. 제101회 총회는 문 전도사와 함께 김수석 군(제4호), 이중희 장로(제6호), 조제원 장로(제7호)도 총회 순직자로 지정하고, 순직자의 신앙 행적을 교회학교 공과교재와 구역공과교재에 포함하도록 허락하였다. 2017년 5월 11일에 문용동이 재학하던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총회 순직자 지정예식을 개최했다.

호남신학교 4학년에 재학하던 문용동은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상무대교회 군선교 교역자로 시무했다. 한완석 목사가 담임하던 광주제일교회 소속 전도사였다. 1980년 5월 18일 오후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귀가하던 문용동은 금남로에서 공수부대 병사에게 구타를 당해 피 흘리는 노인을 병원으로 옮기면서 시위에 참여했다.

서울경기지구 위수사령부에서 군복무를 했던 문용동은 부상자 구호와 헌혈활동을 하다가 도청 지하실의 무기고 관리를 맡았다. 계엄군이 시민군에게 밀려 광주 외곽으로 퇴각한 다음날인 5월 22일이었다. 문용동은 김영복, 박선재, 양홍범, 이경식, 정남균, 이혁 등과 무기고를 관리하면서 시민수습위원회 회의에 참가했다.

당시 도청 무기고에는 수거된 소총과 수만 발의 탄약, 수류탄, 전남 화순탄광 한국화약 화약고에서 가지고온 3600여 상자의 폭발물 등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만 해도 77년 이리역 폭발 사고보다 두 배나 되는 양이었다. 우발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도청 인근 반경 3~4km의 광주 도심이 쑥밭이 될 수 있었다.

문용동은 전투공병대 하사관 출신인 김영복과 오랜 토론 끝에 대참사를 막기로 했다. 김영복은 지뢰매설과 뇌관 점화법 등에 숙달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계엄사 부사령관 김기석 소장과 직접 교섭했다. 이들은 보관하던 폭약 뇌관 2288개를 사전에 전교사에 전달했다. 24일 밤에는 병기근무대 기술무관 배승일을 데리고 와서 수류탄 뇌관을 분리했다. 수류탄 신관 279발, 취루탄 170발, 다이너마이트 2100개의 뇌관을 모두 제거했다. 분리한 뇌관과 도화선, 공이 등은 마대에 담아서 식량창고 쌀통 등에 감추었다.

문용동은 민원실 지하 무기고를 지키다가 5월 27일 새벽에 계엄군이 도청을 진입할 때 희생되었다. 문용동과 함께 마지막까지 무기고를 지키던 김영복은 부상당한 채 체포되었다. 광주를 반파시킬 수 있는 폭발을 막았지만, 그는 계엄군이 침투시킨 프락치라는 오해도 받았다.

문용동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부흥회 강사로 온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다. 대학 문학동아리 활동을 주도하면서 교회 성경구락부에서 청소년 야학교사로 봉사했다. 친구들은 온순하지만 강직했던 청년으로 기억한다. 문용동은 5월 26일 밤에 집으로 가자고 설득하는 형과 형수, 누나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로 거절했다. 그의 신앙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광주시민의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며 일기에 "역사의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리라"고 적었다.

5.18 구 묘역에 방치돼 있던 문용동은 97년 5월 6일에 국립 5.18민주묘지로 이장됐다. 그의 모교 호남신학대학교는 2000년에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2001년 5월에는 호신대 교정에 아담한 추모비를 세웠다. 2007년에는 문용동기념사업회가 발족해서 호신대 총동문회 산하 단체가 되었다. 2010년 5월 18일에는 30년 만에 총회 인권위원회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예배와 제1회 문용동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다.

다시 맞이하는 오월에 문용동을 기억하며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린다. 문용동은 '5·18 최후의 희생자'이자 '유일한 목회자 희생자'였다. 문용동은 죽음을 무릅쓰고 불의에 항거하여 희생한 순교적 신앙인이었다. 문용동을 '광주시민의 안전을 지킨 오월의 작은 예수'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문용동을 순직자로 지정한 총회는 해마다 5월이면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그를 기념할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향한 믿음의 자세를 새롭게 할 때이다.



변창배 목사/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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