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들 정말 안녕하신지요?

[ 특집 ] 변화하는 가정, 교회의 역할은-3.목회자 부인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오현선 대표
2019년 05월 17일(금) 10:41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 '여성'이라는 성별이 교단법의 위헌요소가 되었던 시절에 신학수업을 마친 나는, 여성도 '말씀과 성례의 목사'로 안수하는 미국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갔다. 신대원 과정을 모두 마쳤지만 안수를 위해 다시 미국장로교회의 교육을 받았다. 그 가운데 '목회현장에서 이중관계성을 대응하는 방식'이라는 주제는 생소하였지만 중요한 교육이었고, 목회자 교육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필요한 교육이라 생각했었다.

'이중관계'란 예컨대, 두 사람이 친구관계인데, 같은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관계로 있다든지, 서로 데이트하는 사이인데, 목회자와 성도이기도 한 관계, 부부가 목사인데 한 사람은 담임목사, 또 한 사람은 부목사 등으로 교회에 함께 있게 되는 경우 등 다양한 이중적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성도와 목회자가 데이트관계 일 때, 목회자는 데이트 상대에게 자신이 '영적 지도자'가 아님을 이해하도록 돕고, 상대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 만일 두 사람이 영적, 신앙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데이트 관계는 포기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중적, 복합적 관계성에서 필요한 관계맥락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소중한 관계들이 오히려 모두 흐트러질 수 있다. 교회는 이중적 관계성과 그 관계방식을 중요한 교육 주제로 삼아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적(私的) 관계가 공적(公的) 관계로도 교차되는 상황에서 공동의 이해를 기반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많을수록 교회공동체는 건강한 유기적 관계공동체로 지탱될 수 있다.

이런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와 교회환경으로 인해 남모르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사모'들이다. 가부장 문화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는 한국교회에서 담임목사는 주로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따라서 그 배우자는 여성이며 '사모'로 불린다. 부부라는 관계에서 목사는 남편으로, 사모는 아내로 존재하고 그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영적 지도 관계라기 보다 서로 존중하는 사적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또한 목사인 남편의 아내로서 사모는 교회법상 '직원'이 아니어서 다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항존직과 임시직을 헌법이 명시하는 바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같은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항존직도 아닌, 임시직도 아닌 '사모'라는 명칭을 목사의 아내에게 부여하고, 별다른 공적 논의 없이 그 관행이 고착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80년대 초 신학교를 입학했을 때 자신의 꿈을 '사모'라고 말한 친구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사모의 이미지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목사인 남편의 아내'로 교회에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하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이해로부터, 교인상담, 교회관리, 교회의전, 주방사역, 목사일정관리, 심방동행, 성가대, 교회학교, 전도활동, 설교평가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목사의 비공식 목회보조 역할자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신학수업을 하는 등 전문성을 가지지 않은 채, 목사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목회사역에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반면 사모로서 한 개인이 가진 전문성을 교회가 활용하는 방식과 교회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모의 의지가 교회에 수용되는 방식은 교인의 경우와 다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서, 교회에서 활동하고자 해도 '사모라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거나, 반대로 교회사역 참여 자체를 최소화하고 싶어도 사모라는 이유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사모들이 겪는 심리적 억압은 크다고 여겨진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에 기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공적 보상은 없이 기꺼이 수행하라는 태도까지 요구받는 사모들도 허다하다. 더욱이 이 상황을 견디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고, 남편 목사의 사역과 미래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며 지내라는 조언까지 더해질 때 사모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 영적 고갈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소비하고 있는 '사모' 개념과 정체성은 공식성을 가진 논의의 과정이 없이 모호한 형태로 유통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교회가 사모들의 개별인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당사자 인권을 중심으로 배려하고 대우할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희박하다.

한국사회 변화속도에 적응하며 때로는 앞서는 듯 미래를 기획하는 한국교회가 가장 발달장애를 보이는 부분이 여성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교회는 여성을 남성과 같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이런 교회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교회가 여성친화적 공간, 심지어 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앙을 지켜야 하기에 견디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여성 성도들도 많다. 그러다가 지친 여성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사모들에게는 개별활동을 자유롭게 하거나 떠날 수 있는 선택의 권리조차 없다. '아내'로 살아가는 사람을 '사모'라고 부르며, 존재 자체를 공적공간에 합의 없이 배치하고, 순종과 침묵, 인내와 친절한 현모양처형 여성 이미지를 부여하는 시대착오적 개념을 거둬들일 때다. 사모들의 목소리가 교회 내에 들려져야 한다. 그 분들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인권이 존중되는 교회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가부장문화와 위계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은 채, 전근대적 가족개념에 고착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는 교회들은 이제 그 틀을 깨고, 여성친화적 개혁을 다양한 모습으로 실천해야 한다. 여성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은 채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거나 거짓이다.

오현선 대표/공간엘리사벳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사모란 호칭을 쓰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으나, 현장에서 통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필자의 원고에서 그대로 사용함을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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