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 논설위원칼럼 ]

이정우 목사
2019년 05월 13일(월) 11:00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중략)…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1, 3~5)

이 말씀은 사데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사데는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무역업과 양털 가공업, 염색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한 곳이다. 지형적으로 외부침략으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만했고 부로 인한 사치와 향락이 넘친 곳이기에 물질적으로 풍요했지만 영적으로는 핍절한 상태였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신앙을 지킨 사람들 즉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가 있었다"라고 말씀한다. 신앙의 정조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4일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706번지에서 총회 지정 한국기독교사적 제36호 지정예식이 있었다. 그 건축물은 봉경(鳳卿) 이원영 목사 생가로서 안동시 문화유산 제49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이원영 목사는 안동서부교회의 초대목사이며, 1954년 제39회 장로회 총회시 신사참배 취하 성명서를 발표한 총회장이셨다. 이원영은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손으로 명문유교가문에서 1886년에 태어났다. 그는 한학을 16년 동안 공부했으며, 또한 신학문에도 눈을 떠 혁신 유림들이 세운 교육기관인 봉성측량강습소와 보문의숙에서 공부하여 제1회 졸업생이 된다. 이원영은 안동 예안 지역 3.1 만세 운동을 주도함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된다. 수감 중에 이상동 장로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들여 유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했다. 봉경은 출옥 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향촌인 도산면 섬촌리에 섬촌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당도 건축했다. 이후 이원영은 1926년 평양 조선예수교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제25회 졸업생이 된다.

이원영 목사는 그 당시 일본이 조선의 뿌리와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추진한 황국신민화 정책을 온 몸으로 거부했다. 일본이 내세운 정책은 조선교육령 개정과 신사참배 그리고 창씨개명이다. 1940년대를 전후해서 악랄하게 전개된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거부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원영 목사는 세 가지 모두를 거부하셨다. 조선 교육령 거부로 목사의 자녀들은 졸지에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고, 그는 친히 자녀들을 가르쳤다. 또한, 1939년 12월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일제 당국의 명령으로 목사직 시무 사면으로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일제의 마지막 정책으로 1940년 창씨 개명령이 내려졌지만 이것까지 거부했다. 왜냐하면 이원영 목사의 마음속에는 유교정신과 기독교 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나라에 대한 충과 부모에 대한 효를 몸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4차에 걸친 검속으로 수많은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이원영 목사는 마지막까지 그 옷을 더럽히지 않으셨다.

2017년 8월 3일부터 16일까지 안동 MBC TV에서 '오래된 약속' 124편이 방송되었다. 그 주인공은 선비목사 이원영이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선비, 독립운동가, 교육자, 목회자, 산 순교자로 불리어진다.

이원영 목사는 그야말로 올곧은 신앙의 사표가 되신 분이다. 그를 일컬어 '선비목사'라 한다. 선비의 정의가 무엇일까? 사데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 속에서 선비의 정의를 찾아 볼 수 있다. 진정한 선비는 마지막까지 그 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다. 진정한 선비는 결정적 순간에도 흰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다. 두려움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이원영 목사는 원칙과 신앙을 지켜낸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편법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결정적 순간에 편법으로 그 옷을 더럽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지막까지 옷을 더럽히지 않고, 편법이 아닌 본질에 충실했던 믿음의 선배들을 마음에 새기며 이 땅의 진정한 부흥과 회복의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정우 목사/안동서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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