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 먼 에움길을 둘러서

[ 목양칼럼 ]

신용관 목사
2019년 05월 10일(금) 00:06
2017년 4월 2일, 주일 저녁이었다. 오후예배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데 50대 아저씨가 찾아왔다. 교회 가까운 곳에서 식당을 하던 아저씨였다. 술에 취해 찾아와서는 3시간을 넘게 신세타령을 했다. 그는 도박으로 재산을 다 잃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뇌경색이 찾아와서 병원에 입원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멀리 도망가 버렸다.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딱한 사정을 들은 후에 그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부활주일에 교회에 나오기로 약속하고, 성경책에 그의 이름을 적어 선물로 주었다.

4월 16일 부활주일 아침, 그를 잘 아는 집사님 한 분을 그의 집으로 보냈다. 집사님에게 곧 뒤따라 갈 테니 먼저 가라고 말했다는데, 예배가 끝날 때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로 처음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를 생각하면서 계속 기도하던 어느 날 오후, 아내와 석곡천 산책길을 걷다가 우연히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지난 어버이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어르신 우리 양동교회 은빛대학에 한 번 나오세요!"라고 초청을 했다. 그러자 날짜와 시간을 묻더니 꼭 나가겠노라고 약속했다. '혼자서 걷는 것조차도 불편한데, 그리고 이미 여든이 넘었는데, 과연 어르신이 약속을 기억하고 교회로 나올 수 있을까?'

5월 28일 주일 오후 3시 어르신이 교회로 왔다. 성도들이 너도나도 반가워서 손을 꼭 잡아주고, 얼싸안아 주기도 했다. 집을 나갔던 탕자가 머나 먼 에움길을 둘러서 마침내 하늘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한 생명이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도 이렇게 기뻐하시겠지.' 어르신은 은빛대학 시간 내내 환하게 웃는 얼굴로 힘차게 박수를 치고,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반별노래 자랑을 했는데, 어르신을 MVP에 임명했다. 부상으로 구운 김 한 세트를 건네드렸다.

은빛대학이 끝나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어르신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식당 앞에 앉아서 내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목사님, 너무 고마워요. 내가 이제 남은 게 뭐가 있겠어. 앞으로 교회에 열심히 나올 거야. 나, 목사님과 약속했으니까, 반드시 지킬 거야." 어르신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면서 자꾸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 아침, 내가 아들에게 이름을 적어서 선물로 주었던 성경책을 들고 어르신이 처음으로 주일예배에 나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은 아무도 모른다.

신용관 목사/양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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