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인가, 행함인가?

[ 주간논간 ]

조택현 목사
2019년 04월 30일(화) 10:00
믿음은 우리를 의롭게 한다. 사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학적 명제는 이미 창세기에 나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까 여호와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 더 나아가서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다.(롬 1:16) 그는 믿음과 의와 구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바울은 믿음을 의와 구원의 출발점으로 말한다.

행함은 우리를 의롭게 한다.(약 2:24~24)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약 2:17.26) 그런 믿음은 헛것이기에.(약 2:20) 야고보는 행함을 믿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말한다. 야고보에게 있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따라서 구원을 결여한다.

믿음을 바라보는 바울과 야고보의 관점이 사뭇 다르다. 바울은 믿음을 중심에 놓고, 그리고 야고보는 행함을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양자의 해석은 상호보완적이다. 바울은 행함을 믿음의 대척점에 놓은 채 마냥 그것을 차치하지 않는다. 그 역시 믿음과 아울러서 행함을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너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고 말한다. 야고보 또한 믿음을 무시하지 않는다. 믿음을 말하되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행함 없는 믿음이 가져오는 폐단을 염두에 두고서 그에 대한 보완장치로써 행함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과연 믿음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의 말씀이야말로 정경 속의 정경이 아니던가! 기실 바울과 야고보의 믿음 해석은 다같이 예수님의 말씀에 걸려 있다.

예수님은 믿음을 구원과 연관지어 말씀하셨다. 혈루증 걸린 여자에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신다.(마 9:22) 당신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자에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하셨다.(눅 7:50) 고침 받고서 돌아 와 감사하는 한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신다.(눅 17:19)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맹인에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신다.(눅 18:42)

예수님은 또한 행함을 구원과 연관지어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눅 6:49)고 하셨다. 삭개오가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만일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며 네 갑절로 갚겠다고 결단의 행함을 피력했을 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다.(눅 19:8-9)

예수님은 모름지기 성경해석의 중심이시다. 바울과 야고보의 믿음 해석은 예수님의 해석 아래에 놓일 뿐이다. 믿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되 바울은 믿음에, 야고보는 행함에 중심을 둔 것임에야.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울과 야고보에게 휘둘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바울과 야고보의 해석을 신학적 유연성을 가지고 가늠해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믿음인가, 행함인가' 하는 신학적 명제는 양자택일적으로 선택할 게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과 행함 모두를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게 현명하리라. 교회사적인, 교리적인 모든 담론을 떠나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기에.



조택현 목사/광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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