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거

[ 목양칼럼 ]

박태영 목사
2019년 05월 03일(금) 14:56
필자가 대장암 3기 수술을 받고 면역관리를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때의 이야기다. 당시 4인실 병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람들마다 며칠 간격 입원을 했기에 매 번 낯설고 어색한 동거로 느껴졌다.

몸에 밴 습관과 직업은 못 속인다고 했던가, 2주쯤 지나면서 사람들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폐암 4기로 수술을 할 수 없어 약물치료를 하는 김 씨,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무사히 마친 이 씨, 간암 1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고민하는 오 씨와 병실을 함께 쓰게 되었다.

김 씨는 매월 2박 3일 휴가를 내 카지노를 다녀왔다. 삶의 위로를 도박에서 찾는 듯 했다. 이 씨는 매주 금요일이면 외출을 하고 다음날 들어오는데 하루는 외출 직전 3명의 '깍두기 머리'를 한 젊은이들이 찾아와 90도로 머리를 숙이며 형님이라고 불렀다.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필자는 얼음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조폭, 형님'을 병실에서 만날 줄이야. 오 씨는 철저하게 사물함을 잠그고 병실을 살피는 습관이 있다. 알고보니 그의 직업은 형사였다. 서로의 정체를 숨기려고 나름 조심하고 엉뚱한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지만 2주를 못 버티고 모두의 신분이 드러났다. 카지노 도박왕, 조폭형님, 형사, 목사.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4사람이 4개월 간 불편한 동거를 했다.

도박꾼과 조폭형님은 형사인 오 씨를 매우 경계했다. 또한 목사인 나를 어색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날 즈음, 우리 넷은 긴장이 풀렸고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주고받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어색한 동거에서 불편한 동거로 발전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한 동거가 되었다.

김 씨가 정선을 가는 날이면 잭팟이 터지게 기도해 달라고 하는가 하면, 이 씨는 조폭형님답게 조직 관리와 사업이 확장되게, 형사인 오 씨는 이 두 사람을 잡아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한다. 목사인 나는 누구의 기도를 해줘야 할까?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도 목사라는 중립지대가 있어 긴장이 풀리나보다. 이것이 목사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우리가 품어야 할 세상은 다양하고 흥미롭다.

박태영 목사/샘솟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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