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집 앞을 지나며

[ 목양칼럼 ]

윤광재 목사
2019년 04월 12일(금) 11:59
우리 동네에 음식 맛이 좋다고 소문난 칼국수집이 있다. 점심시간이면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붐빈다.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다. 2층 건물로 한 층이 66㎡(20평) 정도 된다. 이렇게 작은 음식점인데도 영업은 잘 됐다. 그런데 잘되던 국수집이 수개월째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궁금해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형제간의 재산권 다툼으로 소송 중이기 때문이란다. 오랜 동안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을 보니 형제인데도 타협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언젠가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곧 영업을 재개 할 것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타협이 되었는가 보다 했는데 또 얼마 후 보니 현수막이 없어지고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건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맛있는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 건물은 35년 전 우리 교회가 개척돼 첫 예배를 드렸던 건물이다. 35년 전 교회 개척지를 기도하며 물색하던 중에 만난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었다. 이 건물 2층을 전세로 얻어 교회 강대상을 놓고 장의자 12개를 놓으니 교회당이 그럴듯하게 갖춰졌다.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전도사로 개척을 했는데, 상계동이 신도시가 되고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주변이 변하기 시작했다. 큰 건물들이 들어서고 주변 건물도 재건축 되거나 증축됐다. 그런데 유독 이 건물만은 옛 모습 그대로다. 길목이 좋아서 얼마든지 큰 빌딩으로 건축 될 수 있는 자리인데도 그냥 옛 모습 그대인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옛 모습 그대로고, 강단이 있던 자리도 피아노가 있었던 자리도 옛 모습 그대로다.

영업이 중단되기 전에는 종종 칼국수를 먹으러 그 집에 갔다. 개척교회 당시의 추억이 그리워서다. 가면 꼭 예배당으로 썼던 2층에 올라갔다.

'아! 그 때는 그랬었지?' 많은 생각들이 난다. 교인들이 별로 없어 따로 심방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었을 때, 그래도 나는 가방을 들고 매일같이 동네를 두 서너 바퀴씩 돌아다녔다. 사람이 그립고 한 사람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젊은 전도사님이 교회를 개척해 오셨다고 커피를 타 주시던 커튼집 여 집사님도 라벨 공장을 운영하시던 집사님도 사진관 사장님도 다 이때 만났다. 지금 우리교회에 장로로, 권사로 수고하는 분들 대부분이 그때 만난 분들이다.

이 건물, 이 자리에 오면 그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이 건물은 나와 우리 교회로서는 잊을 수 없는 건물이다.

나는 이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이 좋다. 이 건물이 언제까지 이대로 있어 줄까? '형제간의 재산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생각하니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오늘도 초심을 일깨워주는 그 집, 칼국수집 앞을 지나간다.

윤광재 목사 / 노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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