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

[ 주간논단 ]

최갑도 목사
2019년 04월 09일(화) 11:20
인간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결정되고, 그것이 결국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격변하는 이 시대에, 역사의식, 즉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역사의식이란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이해하는 기본 틀인 동시에, 한 공동체의 자존과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오늘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과거와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투시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역사에 대한 고찰은 꼭 필요하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라고 정의했다. 역사란 더욱 나은 내일, 더욱 발전하는 미래, 더욱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거울에 비유할 수 있다. 거울을 보면서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역사는 어디를 향해 나아 가는 것이며, 역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실패를 팔자소관으로 돌리는 숙명론적 역사관, 둘째는 철저히 정반합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이성론적 역사관, 셋째는 자신의 실패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섭리론적 역사관이다. 이 섭리론적 역사관을 가진 이들은 숙명론자와는 달리 그 사건을 단순한 운명으로 돌리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과거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마침내 선한 유익을 가져오게 하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다. 자연히 겸손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용기 있게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3장 16~23절에서 사도바울은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을 향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이 설교를 통해 역사의 주인은 누구이며, 역사의 도구와 소망은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 주고 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다.

한 가지 사실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목표를 향해 이끌어 가실 때 사람을 그 도구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 바로 다윗 같은 사람이다.

"내가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이렇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렇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그 분의 뜻을 쫓아 산 사람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새 역사 창조를 위해 사람을 찾으신다. 다윗 같은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고자 하는 그 사람을 찾으신다. 곧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그러한 사람을 '창조적 소수'라고 부른다. 역사는 바로 이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생각하고, 말씀대로 행동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바로 그 사람으로 인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에 의한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는 삶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이는 사명관의 확립이다. 나의 성품, 특성, 은사, 재능을 잘 살펴서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이다. 그 누구와 비교하지도 않고, 나의 길, 소명의 길, 사명의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둘째는 목표가 선한 것이면 반드시 그 과정도 의로워야 한다. 에리히 프롬(Erich P. Fromm)은 '소유함'보다는 '존재가 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셋째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욕망보다는 필요를, 필요보다는 의를, 의보다는 덕을, 덕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세우는 것이다. 넷째는 경건이 자신의 삶 자체가 되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다섯째,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다. 하루의 첫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나의 삶을 진단하고, 계획하고, 교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며,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다가올 새 역사를 위해 .

최갑도 목사/성내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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