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헌장, 민주주의 이념과 함께 기독교 정신 담겨

[ 특집 ] '상해임시정부 100주년, 그 의의와 우리의 과제'(4월 특집) 2.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기독교 민주주의 정신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9년 04월 08일(월) 13:47
임시정부 국무원. 1열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2열 왼쪽부터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1919.10.11) /자료출처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3·1운동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기미독립선언서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우리 민족은 독립의 의지를 지켜왔고, 해방이후에는 우리 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기념하였다. 하지만 3·1운동은 기미독립선언서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같은 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만들었다. 전자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이라면 후자는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설계한 것이다.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임시헌장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초가 되는 건국 정신이 잘 담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미독립선언서 못지않게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행 헌법전문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3·1정신으로 설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임시정부는 과연 어떤 정부를 지향하고 있었는가? 당시 임시정부가 추구했던 정부는 과거 왕조시대로 돌아가려는 복벽주의도 아니고, 1917년 러시아에서 시작된 볼셰비키 정부도 아니었다. 이들이 추구했던 정부는 오래 동안 기독교를 통하여 한국 땅에 전달되었던 서구식 민주주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1919년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에 어떻게 기독교 정신과 민주주의 사상이 담겨지게 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기독교 민주주의



한반도에 서구식 민주주의가 전해지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 미국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가르쳤고, 이런 민주주의가 기독교 미션 스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특별히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하자 미국에 있는 재미교포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세워지는 나라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민주공화제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미국의 교포들은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세워지는 나라는 과거와 같이 임금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그런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같은 미국 교포들의 바람은 아시아에서도 불고 있었다. 중국에는 의화단 사건 이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교회, 학교, 병원이 세워지고, 잡지들이 출판되었으며, 이것은 중국에 민주주의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바로 1911년 신해혁명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으며 위안 스카이에 의해서 새로운 바람은 차단되고 말았다. 일본도 메이지시대가 끝나고, 1912년 다이쇼시대가 들어서자 기독교 지식인들은 일본도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동경에 가 있던 한국 유학생들도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상을 일본 주류가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시아에 서구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 바람은 미미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참전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세가 연합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드디어 1917년 독일은 미국에 항복하였다. 전쟁에 이긴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세계의 질서를 기독교적인 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으려고 했다. 원래 장로교 목사의 아들이며, 그 자신이 장로교 장로였고, 장로교 대학인 프린스턴의 총장이었던 윌슨은 청교도의 계약사상에 근거한 서구 민주주의야 말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보편적인 질서라고 생각했다. 이런 윌슨에게 강대국이 약소국을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식민지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기독교와 민주주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3·1운동을 전후한 독립운동가들의 임시정부 구상



그러면 3·1운동을 전후해서 우리 민족 지도자들은 어떤 나라를 세우기를 원했는가? 우선 미국의 교포들은 그들의 조국에 기독교정신에 기초한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를 원했다. 이들은 윌슨의 승리로 이런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1919년 4월에 열린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서 새로 세워지는 임시정부가 기독교 정신 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였다.

이런 바람은 상해에 있는 교포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해한인교회 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신한청년당은 1918년 11월 28일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청원서에서 지금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기독교는 한국의 국교와 같은 종교로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일본 동경에 있는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1919년 2·8독립선언에서 선진국의 모범을 따라 신앙과 기업의 자유를 포함하여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했다.

1919년 3월 1일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는 이것을 이런 정신을 더욱 잘 보여 주고 있다. 선언서 처음 문장은 우리가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선언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새로운 나라가 단지 독립만이 목적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세우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놀랍게도 1919년 3월 17일 러시아의 대한국민의회의 선언문에도 그대로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이들은 오늘 날 조선에서 기독교는 국민종교이며, 민주와 자유는 기독교를 통하여 한국에 전달되었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민주국가를 세우기를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1919년 4월 11일에 발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



위에서 언급한 기독교적 민주주의 정신은 1919년 4월 11일에 발표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잘 표현되고 있다. 먼저 이 헌장은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세우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헌장은 세 곳에서 대한민국의 종교적인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전문에는 대한민국이 "신인(神人)의 일치(一致)"로 세워졌으며, 헌장 7조에는 "신(神)의 의사(意思)에 의해서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마지막 선포문에는 대한민국은 "신(神)의 국(國)의 건설한 귀한 기초이니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이미 대한민국이 기독교적인 정신에 의해서 세워지기를 바라는 교포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서 이 헌장은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여 서구식 민주주의를 모방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주권은 모든 국민에게 있다고 하여 대한민국이 특정 계급에 기초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입법권과 행정권을 분리하여 권력의 분립을 이룩하였고, 신앙과 소유의 자유를 인정하여 개인의 기본권을 국가가 함부로 제한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 위에 새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임시정부의 헌장에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인 내용은 담겨져 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19년 헌장에 나타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인 내용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박명수 교수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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