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허락받은 자의 삶

[ 주간논단 ]

전혜정 총장
2019년 03월 25일(월) 17:33
하나님의 존재를 인격적으로 만나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나의 경우, 중년의 나이에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를 드나들면서 과자와 학용품을 받는 것이 교회를 다니는 유일한 이유였다.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모순으로 비쳐지는 내용으로 세례를 받지 않고 교양강좌 듣듯이 교회를 드나들었다. 부모의 슬하를 떠나 결혼 후, 시련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집중하며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말씀을 통해 나의 오만함과 거짓됨을 회개하였으나, 나의 삶은 의무적으로 말씀을 읽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며 인간적인 삶과 욕망으로 가득 찬 시간들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만이 아니라, 시련을 극복하며 간구하는 기도가 이루어진 이,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허락받은 이, 또는 늙음으로 천국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객 등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님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은 무한한 감사와 기쁨임을 이를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생과 사의 길목에서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은 축복이다. 아무생각 없이 하루를 맞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경험한 후,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맞이하는 순간, 눈을 뜨고 하루를 허락받았다는 것이 '감사'로부터 시작되는 이유이다.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인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과 수술 후 깨어나 느끼는 상태가 확연히 달랐다. 어제까지 아무 탈 없이 모든 장기가 제 역할을 다하면서 별 불편함이 없이 지내다가, 정기 건강검진으로 '암'이라는 판정을 받고난 후 나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 몸의 모든 부분이 원활하게 제 역할을 하여 별 불편을 몰랐지만, 수술을 한 이후부터 각 장기가 완벽히 작동을 한다는 것, 혈액순환이 원활한 것, 골격이 완벽하게 구성된 것, 세포가 살아 호흡하는 것 등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사실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밀한 부분들이 각각 제 역할을 다하면서 불편함 없이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왜 기적이 아니겠는가? 단순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실제적인 사건을 경험하지 못하면 쉽지 않다. 오랫동안 믿음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오만이 무너지고 나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간을 맞이하던 순간이었다. 그때까지는 매일 열심히 사는 것은 나의 욕망이었고 완전히 내 중심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 자처하고 열정적으로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지만, 성령님은 잘 모른다. 심지어는 기도할 때조차 성령님의 도우심을 느끼지 못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통제 안에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있게 된다. '예수님의 에센스', 즉 지혜는 삶을 통해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혜로써 우리의 삶에 나타나신다. 지혜는 학문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오직 성령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예수님의 핵심, 에센스이다. 예수님의 에센스를 알면, 우리는 삶에서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동사로 살 수 있다. 동사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지혜를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있으시며 스스로 준비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주신 언약을 이루시고 자신의 영광스런 순간을 준비하실 것이다. 오늘 우리의 반응이 우리를 정의한다.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오늘 주님이 당신에게 주신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르게 보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다. 대답 한마디 잘해서 사람이 기쁨을 얻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제때에 적절한 지혜를 발휘하여 적절한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참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은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의 결과이다. 상황에 따라 말씀과 함께 내린 결론은 쉬지 않고 기도하며 평소에 읊조리던 말씀을 근거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허락해 주신다. 지혜롭게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좋은 것을 얻을 것이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다.(잠 16:20)

하나님을 인격적인 만남으로 동행하는 자는 '무엇'을 '어떻게'하며 살아야 하는가? 마태복음 12장 15절에서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주님과 함께 있었던 이들도 예수님의 능력을 인지했다. 15절에서 이어지며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즉 그들은 행동했다고 했다.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행동을 아는 것은 지식이며, 인지하는 것은 그 지식에 대해 아는 것과 행동을 의미한다. 인지는 행동의 근거가 된다. 예수님의 행동을 인지한 자는 성령님의 임재 앞에서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성령님의 임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기도할 때 기도는 지루하다. 그러나 성령님이 바로 여기,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즐겁다. 나중에는 즐거울 뿐만 아니라 영적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기도에 시너지와 담대함이 생긴다. 성령님의 임재를 인지할 때 우리는 '제 삶이 언제나 주님 안에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뿐 아니라,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제 삶 가운데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화답하며 용기를 내어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레미아는 사람을 믿는 인생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대조하면서 사람을 믿는 인생은 떨기나무 같다고 했다.(렘 17:5~6) 즉 하나님을 떠나 메마른 곳에서 열매도 없이 살다가 죽는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모세가 떨기나무가 있던 곳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삶의 터전으로 여겼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매일의 삶을 순종하는 것이다.

전혜정 총장/서울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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