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가보자

[ 목양칼럼 ] 이진 목사

이진 목사
2019년 03월 29일(금) 11:09
이른 봄비가 어깨를 적시던 며칠 전, 군청 일로 서둘러 나가는데 80대의 할아버지 한 분이 우산도 없이 조금 무거워 보이는 비닐봉지를 땅에 놓고 서 있었다. 이미 승합차가 할아버지를 지나쳐 큰 길로 들어섰지만, 도저히 그대로 갈 수 없어 급하게 차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아까 있던 곳에서 50m 정도 이동해 또 그렇게 서 있었다. "어르신, 댁에 모셔다 드릴까요?" 그랬더니 고마워하며 서둘러 차에 오르는데 주름진 손이 창백했다. "괜찮으십니까?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다시 묻는데, 발아래로 내려놓은 비닐봉지 안으로 1리터 우유팩 서너 개가 보였다.

"아니요, 괜찮아요. 이게 조금 무거워서 그랬어요. 그런데 뉘신지 참 고맙습니다." 이럴 때 나는 목사라는 걸 들킬까봐 에둘러 대답을 한다. 보통 목사가 친절을 베풀면 전도 당할까봐 경계부터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해보니 지난해 마을 꼭대기 집에 노부부가 이사를 왔고, 이웃과의 왕래는 거의 없지만 서예를 배우러 매일 읍내에 다니고 계셨다.

어제 교회당 앞에서 작년 농사에 쓰고 남은 상토(床土), 유박(油粕), 소석회, 황산고토 등 열댓 부대를 귀농인 친구의 화물차에 싣다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는데, 좀 어색하게 인사를 받으시는 게 무슨 눈치를 채셨나 보다. 나는 언제나 교회당 고치 속을 벗어나 그냥 예수님 극진히 뫼시고 일하며 사는 평범한 마을 사람으로 여겨지게 될까.

3년 전, 태안군농업기술센터 농업인대학에서 귀농, 귀촌인들을 대거 알게 됐다. 좋은 분들과 의기투합해 농업회사법인, 영농조합, (사)태안군귀농귀촌협의회, 태안귀농귀촌신문 등을 설립해 자활의 길을 찾고자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서로 알게 된지 2년만에야 어떤 귀농인 부부가 슬며시 고백한다. "실은 저희가 장로랑 권사입니다." 그 표정과 목소리로 그분들이 교회라는 데서 받은, 결코 적지 않았을 상처와 실망들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하나님 뜻으로 포장한 자기 성취욕은 왜들 그리도 강한 걸까. 교인들의 녹녹치 않은 삶의 현실은 그 '믿음'이라는 한 마디 앞에서 외마디 소리 한 번 못 내는 걸까.

"왜 저한데 그 얘길 하세요? 목사한테 또 엮이면 어쩌려구!" "그동안 겪어보니, 목사님은 안 그러실 거 같아요" 사실 우리 마을 어르신들도 전부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목사님은 교회 오라고 안 해서 좋은 목사래유."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목회자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 살아 볼 필요가 있다. 모 교회를 떠나 난민이 된 성도들도 찾아가 만나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함께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도 서슴없이 좀 만나 주면 좋겠다.

이진 목사 / 한마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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