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기'의 훈련

[ 가정예배 ] 2019년 4월 2일 드리는 가정예배

문귀주 목사
2019년 04월 02일(화) 00:10
문귀주 목사
▶본문 : 마태복음 14장 23절

▶찬송 : 288장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독과는 다른 홀로 있기를 요청하신다. 홀로 있다는 것은 장소라기보다 마음과 정신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보다 더 잘 듣기 위함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함께 사는 생활'에서 한 장의 제목을 '함께 있는 날'이라고 붙였는데 바로 그 다음 장의 제목이 '홀로 있는 날'이다. '함께 있는 날'과 '홀로 있는 날'은 둘 다 영적인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 본회퍼는 이를 다음과 같이 썼다. "홀로 있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공동생활을 조심하도록 하라. 공동생활 속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홀로 있기를 조심하도록 하라. 홀로 있기가 없이 친교를 원하는 사람은 공허한 말과 감정에 빠진다. 그리고 친교가 없이 홀로 있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공허한 깊은 수렁과 자기도취와 절망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게 지내기를 원한다면 홀로 있기의 고요함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평안하게 홀로 있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를 찾아야 한다.

또한 고요함이 없으면 홀로 있기도 없다. 고요함이 말이 없는 것과 연관되지만 주로 듣는 행위와 연관이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 없이 단순히 말을 금하는 것이 고요함은 아니다. '소리와 음성으로 가득 찬 날'이 고요함의 날이 될 수 있다. 만약 그 소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메아리가 된다면, 그 음성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된다면 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말할 때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고요함을 떠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 두신 그 친밀한 말씀을 되풀이할 때 우리의 고요함은 완전하게 된다. 이처럼 홀로 있기에 동반되는 고요함의 훈련을 통과하게 되면 '마음속에 운행하는 순전한 영'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증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요함 가운데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는 고요함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말을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 습관이 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고요함 가운데 있다면 누가 우리를 다스리는 일을 할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전에는 그 다스리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을 것이다. 곧 고요함은 신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고요함은 성령의 가장 심오한 훈련 가운데 하나이다. 홀로 있기의 훈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순례자의 길을 가는 어느 시절에 영혼의 어두운 밤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두움의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케 하는 데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진정한 회개는 믿는 것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 저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으로만 충만하길 원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귀주 목사/평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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