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사람, 죽이는 사람

[ 가정예배 ] 2019년 3월 22일 드리는 가정예배

임덕수 목사
2019년 03월 22일(금) 00:10
임덕수 목사.
▶본문 : 마가복음 3장 1~6절

▶찬송 : 500장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 멸망할 때까지 19명이 왕의 자리를 이었는데 이 중 8번의 반역을 통해 왕권이 교체되는 비극을 겪었다. 첫 반역은 바아사가 일으켰다. 그는 여로보암 왕가를 무너뜨리고 왕이 되어 24년을 통치했고 그가 죽은 후 아들 엘라가 2년 동안 왕권을 잇는다. 그러나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서 바아사 왕가도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렇게 반역을 통해 왕이 된 시므리는 7일 만에 무너진다. 이 시므리를 무너뜨린 자가 바로 아합 왕의 아버지 오므리다.

이들은 왜 이렇게 죽이고 죽었는가? 탐욕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내가 갖고, 내가 누리고 싶어 누군가를 죽였던 것이다. 결국 죽인 자들은 누군가에게 죽었다.

죽이면 죽는다. 죽인 자는 누군가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은 동생을 죽였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성을 쌓아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죽음을 당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남을 죽이고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남의 눈물을 담보로 웃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마가복음 기자는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곳에 모여든 일부 사람들의 악한 의도를 담은 시선을 아셨다. 그럼에도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그들 앞에 일으켜 세우신 후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그를 고쳐주셨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참된 안식일의 의미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신 것이다. 반면 그들만의 안식일 전통을 앞세워 결국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모습도 보도되고 있다. 예수님은 살리는 분이셨고 저들은 죽이려는 자들이었다. 사람 중에는 살리는 사람도 있으나 죽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살리는 자가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살리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언약대로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즉각적인 죽음이 아닌 살 길을 열어주시면서 죄의 결과를 깨닫게 하셨다. 성경의 역사는 인간을 죽음에서 살게 하신 구원의 역사이다. 예수님이 죽을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살 길을 여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죽으시는 것 같았지만, 결국 부활하심으로 죽어주는 것이 사는 길임을 깨닫게 하셨다. 죽여서 이기는 자보다 내가 희생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살리는 사람이 결국은 복이다. 다윗이 복을 받은 것은 죽이기보다 살리는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군사령관이었던 요압은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더니 그의 말년은 비참한 죽음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주님으로부터 쓰임받기를 바란다. 사순 절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물으신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평생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덕수 목사/사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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