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직면의 힘

[ 현장칼럼 ]

이형우 팀장
2019년 03월 04일(월) 18:14
서로 마주하게 된 법원 화해권고실의 분위기는 냉냉했다. 사고가 터지고 지금까지 당사자들이 직접 얼굴을 대면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몇 번 전화통화를 한 적은 있지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상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만 강화시켜 버렸다. 사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칫 분노와 상처만 커지거나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화해권고의 모든 과정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화해권고위원들의 조정과정은 그만큼 중립성을 중요하게 꼽고 있다.

당사자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사건이 벌어졌던 그때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일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지, 이 일로 누가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되기를 바라는지, 문제해결과 관계개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상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 회복적 질문의 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풀릴 것 같지 않았던, 찾을 수 없었던 엉킨 실타래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나의 억울함만 보였는데 서서히 상대의 안타까움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비로소 일찍이 들었어야 할 이야기들이 서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직면의 힘'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법원에서 만나기 전에는 대면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상처일거라 생각했는데 직면을 통해 사과의 진정성이 확인되고 책임있는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약속이 나누어진 후에는 두 아이가 서로 맞담배를 피우러 함께 나가기도 하고 피해를 당한 형이 아르바이트 하는 식당에 가해한 동생이 언제 갈테니 서비스 좀 많이 달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 아이들은 동네에서 다시 만나도 이제는 안전하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정의(正義)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정한 정의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고 실질적인 방향 제시이다. 지금껏 우리에게 있어 정의란 잘못한 사람에게 잘못한 만큼의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정의였다. 우리는 이것을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법과 원칙은 이러한 응보적 정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방식은 우리의 패러다임을 형성해 왔다. 그런 이유로 어떤 문제가 터지면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누가 그랬어?', '누가 범인이야?', '잡혔어?', '왜 그랬대?' 등 가해자 초점의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관심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한, 다시 말해 어떤 법을 어겼고 얼마만큼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처벌'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해 같은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래서 잘못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되면 정의를 이룬 것이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된다. 아주 명확하고 깔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다. 가해자를 처벌하면 피해자의 피해도 회복될 것이라는 전제이다. 물론 가해자 처벌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하나의 요소는 될 수 있겠지만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피해가 온전히 회복되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가해자 초점의 문제해결 방식은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가해자 역시 피해회복을 위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기 보다는 자신이 받아야 할 처벌의 형량을 줄이거나 면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가해자에게는 분노와 억울함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형우 조정팀장/한국평화교육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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