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교 정신 이어가자

[ 사설 ]

한국기독공보
2019년 02월 26일(화) 16:29
3.1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당시 기독교학교의 역할이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1919년 당시 전국 823개 기독교학교가 3.1운동의 진원지였고 항일운동의 근거지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일제 치하에서 기독교학교는 신앙교육과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다.

오늘날 여러가지 이유로 기독교학교의 설립정신이 희석되고 있는 상황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우리는 우선, 기독교학교 설립 정신에 집중하게 된다. 3.1운동 당시 기독교학교와 학생들이 핍박과 박해, 그리고 고문에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거리로 뛰어나갔던 배경에 기독교학교의 신앙교육과 민족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독교학교를 재조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3.1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는데 기여한 기독교학교의 조직망 때문이다. 기독교학교의 조직망은 민족대표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서를 전국에 배포하고 만세운동 때 사용할 태극기를 보급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심지어 조선총독부의 강압적인 통제로 민족운동 단체들이 소멸됐을 때도 기독교학교는 끝까지 남아 독립운동을 위한 정보와 자료를 유통하는데 기여했다.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학교들 뿐 아니라 지역의 교회들이 세운 부속학교들도 기독교학교와 마찬가지로 민족운동의 거점이고 진원지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우리는 3.1운동 당시 기독교학교와 학생들이 보여준 기독교 신앙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이 사회 안에서 구현해야할 책임을 갖고 있다. 지난 20일 가톨릭 김희중 대주교는 3.1운동 역사의 현장에서 조선가톨릭교회가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으며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역사의 현장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100년 전 암울했던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기독교학교의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계승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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