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마음과 뜻이 모이면 역사가 일어난다

[ 크리스찬영화보기 ] 1. 말모이

김지혜 목사
2019년 01월 16일(수) 11:51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2019년 새해를 여는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말모이'란,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된 국어사전을 의미한다. 이 원고를 기초로 조선어학회는 1929년부터 재작업을 시작해 해방 후 마침내 '조선 말 큰 사전'(1947~1957)을 발간하게 된다. 영화는 이 사전 발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중심으로 각색하여 다루고 있다.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도로 흘러가는 게 아쉽지만, 당연시하고 때로 소홀히 여겼던 말과 글을 선조들이 지켜냈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깊숙한 곳부터 반성과 감사의 마음이 차오른다.

"말은 곧 정신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등 영화 속 명대사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잘 전해준다. 두 자녀 잘 기르는 게 전부였던 전과자 까막눈 김판수(유해진)는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다 들킨다. 급전이 필요했던 판수는 조선어학회에서 일하기 위해 읽고 쓰기를 배우면서 점차 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한편, 정환은 판수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알게 되고, 전국 각지 학생부터 노인까지, 평범한 사람들부터 지식인까지 말과 마음과 뜻을 모아 사전을 만들게 된다.

알다시피 그 당시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하여 창씨개명과 조선말 금지 정책을 펼쳤다. 일제는 말이 민족의 정신이요, 정체성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우리나라를 지키고 우리나라의 정신과 민족성을 지키는 민족운동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우리말을 지켰던 것이리라.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뜻이 모이면 그 뜻이 모이는 곳이 독립의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영화는 사람들이 모여 뜻을 모으게 될 때, 독립의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독립의 길' 대신 어떤 길을 바라고 있는가?

지난 해 우리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현장을 목도하고 이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계속되던 북한의 도발과 위협으로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던 대신,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비록 순탄치 않은 과정이 많이 남아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민족이 함께 독립을 외쳤던 것처럼, 70년 가까이 갈라져 있었던 말과 마음과 뜻을 다시 모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즈는 "교회의 교회됨으로서 세상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하여 한국교회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아야 할 신앙의 언어들은 무엇일까? 좇아야 할 예수의 정신은 무엇일까? '평화의 길'과 '통일의 길'이 되기 위하여, 섬김(마 20:28)과 화평(엡 2:14), 사랑(요일 4:8)의 언어들을 모으고, 마음과 뜻을 모아 '예수의 길(요 14:6)'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지혜 목사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