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세한지송백'을 꿈꾼다

[ 4인4색 ] 이규환 교수1

이규환 집사
2019년 01월 16일(수) 17:05
'세한지송백(歲寒知松柏)'이란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상(氣像)은 추운 겨울이 돼야 안다는 뜻으로, 군자는 어떤 역경과 환난에 처해서도 지조(志操)를 바꾸지 않고 절개(節槪)가 굳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는 삼국지 중 관우와의 번성전투에서 패한 방덕(龐德)이 절개를 지키고자 끝내 항복하지 않고 목숨을 버린 것에서 유래됐다.

219년, 유비군이 한중대전에서 조조군에게 승리하자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유비가 서촉 익주를 침공할 때나 이후 한중을 차지할 때, 직접 참전 못한 아쉬움과 공을 세우고 싶은 공명심에서 번성으로 쳐들어 간다. 이때 조조는 번성을 방어하기 위해 우금을 총대장으로, 방덕을 선봉장으로 임명했다.

방덕은 원래 마초의 부하 장수로 211년, 동관전투에서 조조의 이간책에 속아 패한 후, 마초와 함께 한중 태수 장로에게 의탁해 한중에 남아 있을 때, 서촉의 지원군으로 간 마초는 제갈량의 설득으로 유비에게 투항했었다.

215년, 조조가 한중을 침략하자 장로의 부탁으로 방덕은 조조와 싸웠는데, 그때 조조는 방덕의 무예와 용맹함에 반해 그를 탐내자, 조조의 책사 가후가 계책을 써 방덕을 유인, 함정에 빠뜨려 항복을 받았고 조조는 그를 상장으로 중용했다.

방덕이 투항한 지 얼마 안 돼 조조는 번성전투에 그를 선봉장으로 임명하자 우금 휘하의 한 부장이 "방덕의 옛 주인 마초가 촉나라 유비의 상장군이며, 그의 친형 방유도 유비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데, 그를 선봉장을 삼는 것은 문제 있다"고 말한다.

우금이 그 말을 듣고 바로 조조에게 아뢰자, 조조는 방덕을 불러 선봉장의 지위를 내놓게 한다. 그때 방덕은 자기의 충절을 의심하는 조조에게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바닥에 찧어 피를 가득 흘리면서 충성심을 보였다. 이에 조조는 그를 다시 선봉장으로 세웠다.

용맹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방덕이 관우와 싸워 첫날은 무승부를 내고, 다음날은 방덕이 쏜 화살이 관우의 팔에 명중한다. 이때 우금은 방덕이 큰 공을 세울 것을 시기해 싸움을 중단시켰다.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우금의 시샘으로 놓친 조조 진영은 결국 긴 장마로 관우의 제방 붕괴작전에 빠져 군대가 수몰됐다. 이때 우금은 비겁하게도 많은 인마를 이끌고 관우에게 항복했으나 방덕은 끝까지 저항하다 처형당했다.

방덕이 관우에게 잡혔을 때 항복했더라면 처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조에게 항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관우에게 항복한다고 크게 흠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마초가 유비 밑에 있고, 그의 친형도 유비 진영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으니 그가 투항하기로서니 큰 비난을 받을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방덕은 항복하지 않고 죽음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반면에 우금은 조조와의 의리와 위나라에서 그의 위상을 봐서라도 항복을 해서는 안 되지만 소인배처럼 살기 위해 투항했다.

추운 겨울임에도 변함없이 푸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세한지송백'은 싸움에서 패한 뒤에도 절개를 지킨 방덕처럼,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비로소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사람의 진면목은 모진 역경에 처했을 때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 모세, 다윗 등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부름 후에 많은 시련, 모함, 환난 등 낙심되는 과정을 겪지만 '세한지송백'처럼 끝내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믿음의 조상들이 어떤 환난과 핍박에서도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켰듯이, 우리 모두 올 한해 주님의 자녀로 구분된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하는 굳건한 믿음의 '세한지송백'이 되도록, 추운 겨울날씨지만 변함없는 푸른 기상을 꿈꿔보자.



이규환 안수집사 / 전 중앙대 정경대학학장 및 행정대학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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