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마중물

[ 땅끝편지 ] 인도 주성학 선교사6

주성학 선교사
2019년 01월 08일(화) 14:39
지겐발그 목사가 세운 새예루살렘교회 강단 앞에 선 필자와 부인 양상미 선교사.
복음이 편견과 배타성 그리고 문화적 우월감을 극복하고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초대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거리는 얼마나될까? 1600년대 초 덴마크 왕실은 남인도의 트랑코바르(Tranquebar)에 '동인도주식회사'를 세워 나가빠뜨남(Nagapattinam) 일대를 식민지화했다. 그들은 해군을 주둔시켜 영국과 프랑스의 동인도주식회사를 견제하면서 인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덴마크는 총독부 관리들과 동인도회사 주재원들을 위해 1620년 시온교회를 세우고 목회자를 파송했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시온교회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고, 유럽에서 온 목회자들도 인도 남부의 타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시온교회 공동체는 타밀인들이 미개하고 유럽인들보다 열등하다는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복음은 편견이라는 높은 담장 안에 갇혀 있었다.

1706년 7월, 독일 출신인 지겐발그(Bartholomaus Ziegenbalg:1682∼1719) 목사가 덴마크 왕실의 파송을 받아 인도 선교를 위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트랑코바르 항구에 도착했다. 그는 이곳을 거점으로 아시아 언어로는 최초로 성경을 타밀어로 번역했고, 현지 리더십 개발을 위한 신학교 운영을 통해 타문화권 선교는 유럽인이 아닌 현지인 기독교 지도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자선학교 운영, 인문과학 분야의 교과서 출판과 보급, 신임선교사들을 위한 타밀어교본 저술과 사전 출판, 인도 고전문학을 번역해 유럽 사회에 인도 종교와 문화를 알리고, 여학교를 설립해 여성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인도에 진출한 가톨릭교회의 선교정책은 '위로부터의 선교'였지만 지겐발그 목사는 '아래로부터의 선교'를 지향했다. 복음이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선교적 관심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양육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것은 당시 카스트제도와 종교적 관습에 붙잡힌 인도 사회에 놀라운 의식 변화를 가져왔다.

지겐발그는 죽음을 1년 앞둔 1718년 현지인들을 위한 새예루살렘교회를봉헌했다. 이곳에서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출입이 제한되거나 카스트의 높고 낮음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고 타밀인들의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새예루살렘교회는 인도에서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복음이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중심지가 됐다.

유럽인들만을 위한 시온교회에서 지겐발그 목사가 세운 새예루살렘교회까지 거리는 약 100m에 불과하다. 이 거리를 가는데 100년의 시간이 걸렸다. 복음이 편견과 문화적 우월감을 극복하고, 성령의 능력이 피부색과 사회적 위치에 제한되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역사의 초침을 움직인다. 의식이 깨이지 않은 공동체는 100여 m에 불과한 거리라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릴 힘이 없다. 돈이 없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세계관 안에 갇혀 마치 머리깍인채 맷돌을 돌리는 삼손과 같기 때문이다.

주성학 목사 / 총회 파송 인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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