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

[ 현장칼럼 ]

김형근 소장
2019년 01월 07일(월) 10:00
하나로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진로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그나마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해서 진학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배우겠다고 하면 격려하고 지원하면 된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돈만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이들은 외부지원 없이 홀로서기를 하기 때문에 쉼터를 나가면 주유나 배달 등 계약직이나 단순시간제로 근무하며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을 이루어도 빈곤의 대물림이 될 확률이 높다.

하나로와 같이 중장기청소년쉼터에서의 목표는 가정복귀가 어려운 청소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이다. 가출, 비행, 학업중단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후 진학이나 직업훈련, 취업과 같은 과정을 통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립하도록 지도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자립'을 말한다. 그러나 쉼터 청소년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어쩌면 저 멀리 보이지만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 자립이다. 쉼터에서 3년 정도 지내다가 사회로 나가 바로 자립하기에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정서적으로도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자녀가 자립하는 시기를 보면 20대 후반이나 30대다. 대부분 결혼 전후에 독립을 해서 나간다. 하나로에서도 쉼터를 나가기 앞서 원룸 보증금이라도 모을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자립지원공간을 별도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위기의 청소년 사역을 교회에서는 특수사역으로 분류된다. 특별한 목회 사명을 가진 목회자들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 위기의 청소년들을 위해 특별한 사명이 있는 목회들이 선교적 소명으로 어려운 현장을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다. 지역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란다.

위기에 선 가정 밖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을 구상하고 큰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 교회에 출석하는 청소년들 중에서 방황하는 친구들을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한걸음씩 나가면 좋을 것이다. 필자도 16년간 청소년 복지현장에 있었지만 처음부터 특별한 소명으로 이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함께 살고 생활하다보니 한 친구 한 친구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나 흘렀다. 교회 성도들도 내 아이가 '그런' 친구들과 구별되고,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이 아이들은 사회는 물론이고 교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분명한 비전이 있다. 비록 사회에서는 위험한 비행 청소년이고 해체된 가정의,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가장 낮은 자리의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청소년들을 만지시고 높여서 사용하신다는 말씀이었다.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일 때도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의 기도에 직접 응답하시고 작은 기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가나 혼인 잔치의 종들처럼 기적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김형근 소장/군포하나로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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