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개혁교회 이야기

[ 주간논단 ]

박재윤 원장
2018년 11월 20일(화) 10:00
뉘른베르크의 성 마르타 개혁교회 이야기

독일 남부 뉘른베르크의 중앙역에서 구시가로 걸어 들어가는 쾨니히 거리의 우측 골목 약간 안쪽(79번지)에 성 마르타(St. Martha)라는 개혁교회가 있다. 중세 1385년에 순례자용 숙박시설의 부속 교회로 세워졌고, 종교개혁 이후 1620년까지는 교회당이 아니라 유명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경연장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개신교인들의 예배장소로 사용되던 끝에 1800년 시 의회에 의하여 비 루터교적 복음주의 개혁교회(결국 스위스에서 발원한 장로교파라는 뜻이다)로 공인되었다. 제단실 창에 설치된 색유리그림은 15세기에 제작된 명품이며 내부 정문 위 발코니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구 오르간에 대체하여 1990년에 건립된 최신형의 젊은 제품이다(Vier사 제작).

작지만 아름다운 이 교회당은 2차 대전의 극심한 공중 폭격을 잘도 피하고 종전 후 2014년까지 69년간 옛 모습을 유지하며 시민과 신도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데 불행히도 2014년 6월 5일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말미암아 교회당 전면의 퍼사드(facade) 벽체와 내부의 아치 기동 일부만 남기고 14년된 새 오르간까지 포함하여 완전히 소실되었다. 다행히 중세의 색유리그림은 피해가 비교적 심하지 않아서 해체되어 뮌헨의 수리 공방으로 후송되었고 2000년에 목공예 작가 베르너 말리가 만든 성만찬 탁자는 화재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화재 직후 전 교회적, 전 도시적인 헌금과 지원에 의해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이 유서 깊은 마르타 개혁교회의 앞 큰길 건너편 비스듬한 방향인 쾨니히 거리 64번지에는 로마 가톨릭의 성 클라라 성당(St. Klara Kirche)이 있는데 그의 공식 별칭이 '열린 교회'라고 한다. 이 별칭에 걸맞게 이 성당측은 마르타교회의 화재 이후, 공사가 계속된 몇 년 동안에 걸쳐 매 주일 아침 9시 30분부터 예배 끝날 때까지 자신의 성당 본당을 화재로 예배처소를 잃은 이웃 마르타 개혁교회에게 사용토록 빌려주어 왔다. 참 아름답고 너그러우며, 보기 드문 이웃 두 교회와 성당의 관계요 사귐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라면 이게 어디 쉽거나 가능한 일이겠는가?

내가 이 두 교회의 가슴 아프고도 훈훈한 사연을 알게 된 것은 2015년 7월, 내가 섬기는 경동교회 1부 성가대가 뉘른베르크와 슈트르가르트를 방문하여 몇 독일교회에서 한국 작곡가의 성가들을 연주할 때 우연히 입수한 '뉘른베르크 구시가의 교회들'이라는 팸플릿을 보고서였다. 귀국 후에도 소실된 교회의 재건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궁금하여,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곤 하였다. 작년(2017년) 5월에 상량식(Richtfest) 예배를 드리면서 전통적인 상량행사 외에 새로 주조한 여러 종들 중 하나를 타워크레인에 매달아 퍼사드 맨 꼭대기의 종각으로 올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았고, 그 때 예정으로는 1년 후면 완공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금년 6월에 와서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니 '6월이 아니라 10월'이라 하였으며, 10월 중순에 다시 보니 이미 지난 9월 30일 주일에 입당예배를 드리고, 하루 몇 시간씩 개방하고 있으며 정식의 헌당예배와 행사는 11월 10~11일 양일간에 걸쳐 드린다고 하였다. 이제 헌당식도 끝났겠다.

새 교회당의 외모는 구 건물과 똑같이 재현되었고, 내부는 완전히 현대화되어 옛 모습과 판이해졌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제단실의 중세 색유리그림 창들도 아름답게 재현되었고, 화재를 이겨냈던 성만찬 식탁의 작가가 이번에는 자그마한 설교단을 새로 제작하여 짝을 맞추게 되었다. 하나 궁금한 것은 오르간에 대한 말이 일절 없는 것이다. 내부 사진을 보아도 오르간이 있었던 발코니 자리가 비어있는 듯하다. 공사비는 총 1200만 유로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새 교회당의 헌당에 대한 축하와 4년 반의 기다림에 대한 치하를 보낸다.

박재윤 원장/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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