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찬양학이다..."

[ 신학플러스 ] 신학과 음악의 만남

이상일 교수
2018년 11월 16일(금) 08:04
'신학'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만이 배우고 말할 수 있는 학문 분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신학' 또는 '신학하다'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오늘날과 다르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와 교회 역사에서 사용된 '신학'의 의미를 고찰한 유해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다"라고 주장한다. 신학의 의미가 그렇다면, 음악과 신학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나님과 우리의 신앙에 대해 말하고 표현한 성악곡과 기악곡을 합하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작품의 수가 수천만 편 이상일 것이다. 이것이 모두 신학 작품이고 신학의 자료이다. 현요한도 "신학은 찬양학(doxology)이다"라고 정의를 내린 후, "신학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논술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학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신학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신학의 목적이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음악과 신학이 만나야 하는 이유, 즉 음악에 대한 신학적 연구가 필요한 이유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음악이 인간의 삶과 성도의 신앙생활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의 신앙생활에서도 음악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몇 해 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역동적 예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뜨거운 찬양과 음악"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제일 높았고, 예배 중 하나님의 임재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경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0%를 넘었다. 둘째, 신학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회중찬송곡, 특히 찬송가는 "노래로 부르는 신학"(theology sung)이요, "압축된 신학"(compacted theology)이다. 돈 셀리어스(Don Saliers)는, 수백 편의 설교보다 예배의 "음악"에 의해 교리와 신조가 더 깊게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호이벨(Albert van den Heuvel)은, 찬송가가 "우리 시대에 우리가 마음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신앙고백 문서"이며 "교리문답서를 대신하게 되었다"라고까지 말한다. 회중찬송곡은 신학을 전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우리의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셋째, 음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H. 밋첼이 말했듯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인간의 영에 계시해 주시듯이, 예술, 특히 음악을 통해서 초월적인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맞닥뜨리거나 그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음악론'을 쓴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고대 교부들로부터 수많은 신학자들이 음악을 연구하고 음악에 대한 글을 남겼다. 그 중에 음악을 가장 높이 평가한 사람은 루터일 것이다. 비록 음악에 대한 논문이나 저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루터의 글 곳곳에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과 사상이 나타나 있다. 그가 "음악은 신학 다음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그리고 음악이 "하나님의 말씀 다음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음악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내가 신학자가 아니라면 음악가가 되고 싶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리고 "젊은이가 음악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면 그를 설교자로 세우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음악신학'이라는 말이 독일의 오스카 죈겐(Oskar Sohngen)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됐다. 음악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교회)음악을 신학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그 외에 음악신학 분야의 대표적인 현대 학자들 중에 에릭 라우틀리(Erik Routley), 제레미 벡비(Jeremy Begbie), 돈 셀리어스(Don E. Saliers), 해럴드 베스트(Harold M. Best), 존 위트블리트(John D. Witvliet), 폴 웨스터마이어(Paul Westermeyer), 브라이언 렌(Brian Wren) 등이 있다. 한글로 번역된 대표적인 관련 저서로는, 해럴드 베스트의 '신앙의 눈으로 본 음악'(IVP, 1995)과 돈 셀리어스의 '신학으로서의 음악, 음악으로서의 신학'(대장간, 2010)을 꼽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음악신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 그나마 하재송과 필자가 관련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

음악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시 회중찬송일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최고 관심주제이기도 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회중찬송을 신학적으로 접근해서 발표한 논문의 주제에는 '21세기 한국문화와 회중찬송', '간세대예배와 회중찬송', '남북한교회가 함께 부를 회중찬송', '공적 신학과 회중찬송', '합심기도와 회중찬송', '루터와 칼뱅의 음악신학과 회중찬송', '3.1정신과 회중찬송' 등이 있다. 그러나 교회음악만 신학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일반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도 신학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음악의 본질, 의미, 역할과 기능, 음악이 감정과 삶에 미치는 영향, 음악 만들기 행위 등도 신학의 중요한 주제이다. 니콜라스 쿡(Nicholas Cook)이 말했듯이, "음의 높이, 장단, 음색, 강약의 조합은 영적이며 감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숨겨진 내부를 분해할 수 있으며, 음악 자체에 대한 연구는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돈 셀리어스는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 세상에서의 인생의 신비들에 대해 말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음악이 '신앙적'이거나 '거룩한' 내용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언어를 통해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노래하며 음악을 들을 때 훨씬 더 심오한 경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신학자들이 음악, 특히 예배음악을 신학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연구 주제로 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회중찬송곡 가사를 직접 써 보기를 권한다. 가사도 신학 작품이다. 그 가사가 곡조와 결합되어 예배에서 사용된다면 어떤 연구논문이나 책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다. 호이벨이 말했듯이, "신학적 통찰력이 예배찬송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

이상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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