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목회로 찾는 교회의 희망"

[ 특집 ] 신년도 목회기획 3. 선교적 목회

오창우 목사
2018년 11월 16일(금) 10:16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이고 우리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선교사가 되고 일터에서 선교사가 되고 동네에서 선교사가 되고 세계를 향해 선교사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런 동력을 잃어버렸다. 세상이라는 운동장을 향해 뛰어야 하는데 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선교회'와 '전도회'라는 이름으로 자치회 역시도 세상을 향한 선교와 전도의 동력을 크게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교수로 있다가 성령의 불을 받아 목회자가 된 분이 전통적인 교회에 부임을 했다. 답답함을 느낀 목사님은 교회에 손을 들고 말했다. "일 년에 한번은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선교지에서 목사님이 설교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 가고..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선교지에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가정이나 일터 동네와 그 어디서든지 그 곳을 선교지로 만들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15년 전에 세계적인 미래학자 레너드 스윗은 "우리는 이민 세대를 살고 있다"고 했다. "목사님은 컴퓨터를 얼마나 하시나요?" 한 가정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세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문화와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들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지 않으면 여전히 다른 문화, 다른 나라를 사는 이민세대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 다음세대의 문제는 교회가 다 해결할 수 없다. 가정에서 부모가 선교사의 자세를 가지고 자녀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섬기는 선교현장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선교적인 교회에 답이 있다. 한국교회의 침체문제는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사에 달려 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영적파워를 가져야 한다. 예배와 소그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복음의 지식이 권력이 아니라 파워이고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봉사의 장을 뛰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이 섬기려 왔다고 하시고 3년간 사랑의 예수님을 보여 주셨고 1주일간을 대속의 제물이 되는 시간을 가지셨다. 봉사의 장을 만드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랑을 위한 대속의 제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믿게 된다. 교회는 말씀의 현장을 넘어 삶의 현장에서 봉사를 통해 예수님의 성품훈련과 예수님을 닮기를 해야 한다. 교회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삶을 위해 뛰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대속의 죽음인 전도를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세요!" 가정에서도 자녀들에게 이렇게 섬김의 선교사가 될 때 수 천대까지 복을 받는 가문이 될 것이다. 이웃의 교회는 가정예배를 통해 자녀들이 신앙으로 서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교회는 선교를 목표로 하고 신자는 선교사가 되어 생명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살 때 교회는 활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제103회 총회가 영적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가 되자는 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안타까움과 부르짖음이라고 충분히 공감한다. 지난 총회의 주제인 마을목회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관리에 길들여진 목회자와 교인들이 영적운동장을 뛰게 하는 그림이고 설계도이다. 선교를 하는 교회의 일 년 목회 로드맵의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가? 선교적 교회의 목회철학 첫 번째는 지역에 교회를 알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교인들은 교회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회가 지역의 자랑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한 숙제는 관리를 바라는 교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람과 만족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다.

월드컵이 끝나면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지는 것처럼 이 땅에서 경기를 마치고 나면, 신앙의 대를 이어 수 천대까지 복을 받는 가문이 되고 하늘나라의 상까지 받게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전도를 위한 마을장터를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로 나누어 3번 정도를 해 볼 수 있다. 지역의 마을공동체에서 학습한 것을 교회공동체에 적용하여 10번 정도의 주민모임을 가질 수 있다. 지난 가을,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지역을 위한 청소하기, 독거노인과 다문화 난민들을 위한 전등교체하기, 친환경수세미와 비누 만들기, 작은 음악회와 핸드폰 사진 찍기 등을 통해 교인과 주민, 그리고 다문화가정 등이 모이는 모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마을장터를 마련하고 지역의 주민들과 다문화 가정, 반팔 차림으로 찾아온 제주 난민들을 초청해 함께 하는 화합과 나눔의 장을 열었다. 마을장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을 대접하고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500여 명이 모여 전도의 접촉점이 되는 시간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결과는 계속 만남의 장을 가졌던 마을공동체의 모임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평가이다. 마을에서 배우는 공동체 활동에서 전통적인 교회교인들도 선교적 교인이 되게 한다.

'지속가능'으로 교회의 상황을 판단해 본다. 교회에게 지속가능한 일은 '성장'이 아니다. 교회의 지속가능은 전도하는 행위이다. 벤투호처럼 교회의 희망도 '빌드업'에 있다. 공격적인 축구를 통해 골을 넣고 승리까지 하는 활력에 박수를 보낸다. 예수님은 "가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가서 복음을 전하는 그곳에 구원-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역사가 있고 교회의 활력이 있다. 이제는 성장했던 시절의 관리목회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을 선교적 현장으로 만들어가는 교회와 신자에게 희망이 있다. 선교적 목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바란다.

오창우 목사(한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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